여전히 티타임, 이제는 커피타임
카페인에 약한 나는 커피를 마셨다기만 하면 가슴 두근거림과 수면 장애를 경험하였다. 커피는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멀리 지내다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과제 제출을 위해 날밤을 새워야 했을 때,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일에 지쳐 남은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 에너지 드링크 개념으로 마신 게 다였다. 여전히 커피는 치열하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친하지 않은 존재였다.
어쩌다 카페를 가면 커피보다는 티를 마셨다. 홍차나 아이스티, 허브티도 좋았다. 엄마가 동양차도 좋아해서 엄마를 통해 보이차나 발효차 같은 동양차도 배웠다. 홍차나 보이차에도 카페인이 들어있다고는 하지만 심리적 현상인지 커피를 제외하고는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었다.
그러다 카페를 중심으로 하는 외식업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부터 커피와의 진지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일본 내 엄청난 수의 카페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보니 커피는 당연히 공짜, 주위엔 온통 커피 전문가들, 게다가 새로운 커피 브랜드 프로젝트에 덜컥 참여하게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커피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일본 내에서도 탑이라고 불리는 커피 스페셜리스트께 무료로 커피 강의까지 들었다. 아직까지 바디가 뭔지, 커피 맛의 정도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좋은 환경 속에서 감사히 공부하며 하나하나씩 배워갔다.
사실 지금까지도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아침 수혈하듯 커피를 마셔줘야 한다. 낮에는 졸음을 깨기 위해 또 한잔 마셔준다. 그러나 여전히 홍차도 좋다. 예쁜 앤틱 찻잔에 담아 마시는 홍차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더 즐겁게 해 준다. 이제는 놓칠 수 없는 삶의 쾌락 중 하나가 되었다. 티타임 그리고 커피타임.
앤틱 찻잔으로 기억하는 그날의 감성
[어느 날 어떤 곳에서 마셨던 찰나의 티타임 그리고 커피타임]
영국 앤틱 파라곤의 고급스러운 화이트 앤 골드톤의 찻잔.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스위츠는 진리. 나른한 낮의 졸음을 깨우는 시간.
매일 아침 출근 전 즐기는 커피타임. 영국 빈티지 로열 칼돈의 소박하지만 차분한 크림색의 찻잔이 분위기를 더한다.
영국으로 시집간 친구 승희와 그녀의 남편 알렉이 소개해준 런던의 위타드 애프터눈 티. 현지에서 즐기는 티타임은 더 소중한 추억이었다.
네이비와 골드의 고급스러운 색 조화가 아름다운 영국의 앤틱 찻잔 투스칸. 넓은 볼과 화려한 디테일이 홍차와 잘 어울린다. 파운드케이크와 함께하는 티타임. 찻잔 내부의 그림이 맑은 홍차에 비친다.
아침 출근 전 간단한 커피타임. 일본에서 가져온 오래된 이 머그컵은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자매 STOMACHACHE의 작품. 내가 공간 디자인을 맡았던 카페와 컬래버레이션을 했다. 버터 프렛즐은 여의도의 맛집 폴앤폴리나 베이커리에서 사 왔다.
영국 빈티지 로열 우스터의 페퍼민트 컵앤소서. 보타닉 한 디자인이 상큼한 레모네이드와 잘 어울린다.
영국 빈티지 멘델의 귀여운 잔에 담긴 커피와 달콤한 마카롱을 함께 먹었다. 민트색과 핸드페인팅 그림은 요즘 감성에도 어울려 빈티지 입문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오사카 출장 중 들렀던 서양차관이라는 레트로 커피집에서 앤틱의 최고봉인 독일 마이센 찻잔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그곳은 실내 공기까지 모두 진짜 앤틱으로 담겨있는 것 같았다.
빈티지 입문자를 위한 팁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찻잎과 커피콩들이 있다. 그것들을 즐기는 방법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예쁜 잔에 담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은 귀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빈티지 앤틱 찻잔은 그렇게 의미 있는 마음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브랜드를 이것저것 따지기보다는 내 눈에 띄는 티세트를 구매해보자. 컵앤소서부터 시작해도 좋고 밀크 피처와 슈가볼 거기다 티팟까지 함께 구매해 정통 티타임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