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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Oct 22. 2023

눈사람이 되고 싶어

내가 깨달은 것

"I wanna be a snowman"


 학기가 끝날 무렵,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유치원생이나 할 법한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내가 있었던 지역은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지역이었다. 어마무시하게 큰 눈 사람을 만들자며 친구들과 약속했었지만, 장갑이 없는 맨손으로 만들기엔 너무 손이 시렸다. 그래서 눈싸움이나 하다가 피자를 사서 기숙사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눈사람이 되겠다는 말에 물었다.

"눈사람이 될 수도 없겠지만, 왜 눈사람이 되겠다는 거야?"

"그러면 여기에 조금 더 남아 있을 수 있잖아."

"눈사람이 되어서 여기에 남아도, 봄이 오면 녹잖아."

"그럼 겨울만이라도, 눈이 되어서 다시 오면 되지. 그때 너희가 눈사람 만들어줘."


 모든 친구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국제학생들은 두 학기를 미국에서 보낸다. 나는 학기를 추가적으로 늘리고 싶다고 미국 측에 요청했고, 학교 측은 테스트 결과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비용 부담이 컸던 부모님은 돌아오라고 한 것이다.


 내겐 미국에 남고 싶은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드라마 드람하이에서는 '행복을 느끼는 방식, 두 가지에 대한 대사'가 나온다. 하나는 지나고 보니 '행복했었네' 생각을 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순간에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전에는 없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고단했다. 슬픔, 분노가 있던 과거와 불안은 모두 한국에 두고 왔고, 미국에서의 나는 그 모든 것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순간 행복을 온전히 느꼈다. 미국의 문화도 좋았고, 친해진 친구들이 아직 거기 남아있지 않는가. 그러나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삶을 살아가는 것.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웠지만, 후회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값진 시간이었다. 영어실력이 좋아진 것은 물론 이거니와 더 중요한 것을 알았다.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해야 한 다는 것,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삶을 나아가게 해 줄 소중한 추억도 듬뿍 얻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내 식견을 넓혀주었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꾸어주었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와 같이, 짧은 시간 꿈을 꾼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듬뿍 채워준 친구들이 여전히 고맙고 그립다.


 그런데 얘들아, 나 눈사람 만들자고 한 건 이루고 싶은데. 이번엔 장갑을 준비할 테니 너희는 시간을 마련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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