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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븐제이 Jun 21. 2024

앞으로 좋아하는 숫자는 '4'

배우 김진영(덱스)을 만나다 마지막 이야기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들러 재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배우님 만날 준비를 했다.

무대인사 마지막 날, 마지막 인사.

영화가 시작되기 전 배우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운 좋게 앞에서 4번째 통로 쪽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하루종일 하늘이 나를 도우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왠지 꼭 선물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

기대하는 마음 그리고 어제처럼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시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배우들이 등장했다.

핸드폰 카메라 화면을 닦고 최대한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어제보단 덜 가깝지만 그래도 충분히 잘 보이네! 음 만족해!

혹시 옆으로 지나가게 되면 무조건 선물부터 내밀어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배우들의 인사말이 끝나고 친필 사인이 담긴 포스터 증정이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님이 먼저 나눠주기로 했고 뒤이어 마지막이니까 본인이 좋아하는 숫자 배합으로 가겠다고 했다.

누가 되려나 벌써 너무 부럽다 하며 눈으로 그를 보고 카메라도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다른 분의 플래카드에 가려 카메라에 그의 얼굴이 담기지 않아 아쉬워하고 있던 찰나


‘4에 4, D열에 4번 계시나요?’


'...? 어? 나 4인데, 어? 나 D인데...?'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배우님이 오시겠다며 이쪽을 향해오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얼음.

예의에 어긋날까 일어나려 했더니 가드님은 앉아계시라고 한다.


하얗고 뽀얀 조각이, 아니 영화 속 한 장면이 내 앞으로 걸어온다.

순간 이거 실화인가?


정말...?


그리고 마주한 배우님은 내가 어제 본 사람 그리고 영화에서 본 사람이랑 또 달랐다.

약간은 슬퍼 보이지만 깊은 눈매, 촉촉하고 그윽해 보이는 눈빛.

'감사합니다' 악수하며 인사부터 건네는 그에게 나는 선물부터 내밀었고 가드님이 받아주셨다.

뒤이어 내 핸드폰을 가져가선 비디오를 찍고 있던 화면을 제어하지 못해

잠깐 어리둥절해했고 바로 셀카모드로 돌입했다.

내가 매일 들락날락했던 카페에서 그리고 SNS에서 보던 그 셀카를

지금 내 앞 아니 내 옆에서 나랑 찍는다고...? 믿기지 않았다.

어이없이 순식간에 두 장이 찍혔다.

일어나려 하는 그를 보내기 아쉬워 조그만 목소리로 '한 번 더.'를 외쳤는데

일어나다 말고 '한 번 더?' 하면서 또 한 장의 셀카를 남기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셀카는 3장이 되었다.


핸드폰을 건네주는 줄 알았지만 감사하다며 또 한 번 악수를 청하는 배우님의 손 앞에

나의 한 손엔 포스터가 쥐어져 있었고 비어 있는 한 손으로 겨우 손을 잡았다.

나에게 일어난 그 찰나의 순간이 너무 멍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제 정말 보내줘야 하는 배우님의 손을 잠시 더 잡고 싶었지만 이미 몸은 뒤를 향해있어 아쉽게 놓아주었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는 손의 촉감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직업 특성상 거친 내 손만 괜스레 탓하게 되었다.


바로 옆에서 다른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그 다정함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문득 찰나의 순간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카메라에 담았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는 내내 입술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했다.




이게 되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던 순간들이 나에게 실제로 일어났다.


진정되지 않았던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가족들과 어제 함께해 줬던 친구에게 우리의 셀카를 보내며 자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곱씹으며 방방 떠있는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누군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응원하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나도 더 열심히, 잘 살고 싶어 지게 만든다.


하루가 지나고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는 팬카페에 후기글을 올리니 많은 분들이 같이 기뻐해주었고

감사하게도 그 순간이 담긴 영상들도 보내주셨다.

지난 영상들을 보니 기억의 오류도 있었지만 선뜻 선의를 베풀어주신 분께 무한 감사드린다.


며칠이 지난 지금.

내 생에 처음으로 핸드폰 배경화면이 셀카가 되었고 매일 배경기분이 절로 만들어졌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만들어지는 기분은 늘 설레고 입꼬리가 바짝 올라가 볼때기가 당겨졌고 젊어지는 기분까지 느껴졌다.

딱히 좋아하는 숫자가 없었던 나에게 좋아하는 숫자가 생겼다.


짧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순간이었고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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