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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븐제이 Oct 30. 2023

그 시절 제주

2021.10.25 - JEJU


제주에 왔다.

이곳에 온 지 5일째다.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으면서도 느리게 간다.

낮에 돌아다닐 때는 시간이 잘 가는데 밤에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시간이 너무 안 가는 것 같다.

제주에 오기 전에 이곳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하고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근데 그냥 마음이 너무 편하다.

이상하게 허리도 덜 아픈 것 같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기는 중이다.

난 겁도 많고 생각도 많고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곳이 와서 나 자신을 돌아보니 겁은 있지만

생각보다 용기 있다. 그런 점에서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지난 토요일에는 송악산 둘레길을 다녀오고 환상적인 노을도 봤다.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약간은 심심하고 따분하지만 운전할 때 크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겁고 자연과 가까이 있는

이곳 제주가 나랑 참 잘 맞는 것 같다.

아직 집에 갈 날짜를 정하지 못했다.

계속 고민 중이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엔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잘 즐기기로 했다.


송악산 둘레길





2021.10.27 - 공간


공간이 언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눈과 마음을 뛰게 만들었다.

눈이 즐겁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정말 다양한 공간들을 만나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곳도 있었고 딱 보이는 그대로인 곳도 있었다.

그렇게 기대는 안 했는데 그곳의 햇살, 음악이 나를 설레게 하는 곳도 있었다.

그냥 딱 봤을 때 멋진 곳 말고 자연과 음악과 분위기가 한 데 어우러져야 훨씬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다.

내가 원하는 일이 공간을 만드는 일인지 주어진 공간에 조명, 음악, 소품으로 스타일링하길 원하는지

곰곰하게 생각해 보면 난 후자인 것 같다.

공간을 만들고 스타일링까지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의뢰인의 니즈도 잘 파악해야 하고

내 주장만 밀고 나갈 수 없기에 이 문제는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을 알차게 쓰고 싶다.

앞으로 나의 공간을 위하여.

그게 내 집이 될지, 일터가 될지 알 순 없지만 무엇이든 간에 내가 행복한 일 일 것임은 틀림없다.




2021.10.28 - 10월 28일


오늘은, 아니 오늘 날짜는 내 인생에서 꽤 의미 있는 숫자였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에.

내 마음은 내 생각보다 단단한가 보다.

마음이 아프거나 쓰리지 않다.

또 우울하거나 괴롭지도 않다.

'아, 오늘이었지. 내가 생각보다 많이 괜찮아졌구나.' 하면서 아침의 내 마음을 살폈다.

각자 행복하게, 잘 살자.




2021.10.28 - 고산리


처음엔 이런 동네가 있는지도 몰랐다.

우연히 비앤비어플에서 아주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다.

지금 난 이 동네를 7일째 여행 중이다.

정말 살아보는 느낌의 여행을 하고 있다.

아침의 햇살, 새들의 지저귐, 한적함, 모든 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뿐인가.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는 알참과 해안도로도 가깝고 무엇보다 위치가 정말 좋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왔다 갔다 하기 너무 좋고 제일 중요한 것!

일몰의 끝내줌을 매일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사랑해, 고산.

내가 제주에 자리 잡는다면 무조건 이 동네.


고산리


2021.10.28 - 고산리 2


친가, 외가 둘 다 시골 한적한 동네여서 시골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의 생활패턴이 늘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매운 걸 찾고 마켓컬리 장 보는 재미였다.

이곳 시골에서 만약 내가 살게 된다면 과연 이런 편리한 것들 없이도 가능할까 싶었다.

겨우 일주일이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충분하다. 정말 충분한 삶이다.

동네에 마트가 있고 내가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냥 없어도 살아지더라.'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없어도 계속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들, 주어진 것들 안에서 해결하면 된다.

그게 음식이 아닐지라도.


2021.10.28 - 선물 같은 하루


유독 제주에 와서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한 날들의 연속인데, 아침부터 밤까지 완벽했던 하루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유독 선물 같은 하루라면 상상이 될까?

우연히 찾아간 곳에서 근사한 브런치를 먹고 자연이 주는 위대함에 또 한 번 감동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마음을 정돈하고, 뮤지엄에 가서 근사하고 멋있는 설명과 함께 전시도 관람하고 오고 가면서 제주가 주는

자연 풍경에 또 한 번 놀랐다.

꽤 먼 거리를 운전해서 잘 다녀오고 돌아와 환상적인 노을까지 마주했다.

꼭 기록하고 싶었던 날이라 사진도 남겨두었던 어느 멋진 날.



2021.10.28 - 호스트


내가 예약한 숙소는 호스트와 한 집에서 지내는 곳이다.

호스트는 1층, 나는 2층.

첫인상부터 좋았다. 웃음기 많은 얼굴. 쿨내 나는 성격.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당에 잔디를 깎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문득 귀엽고 예뻐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도 시골에서 이런 삶을 살면 어떨까?

잠깐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2층에서 보이는 창 밖 풍경





2021.11.01 - 내 사랑 금능


친구와 함께 서쪽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금능해수욕장으로 향했다.

10월인데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환상적인 날씨의 연속이다.

캠핑의자, 매트, 스피커 그리고 책.

이것만 있으면 딱이었다.

아, 햇살을 가려줄 선글라스도!

그곳에서의 몇 시간이 금방 흘렀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좋았고 햇살 가득한 곳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책을 읽고.

강아지와 뛰어노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도 너무 좋았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일요일 오후를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해 질 때쯤이면 또 얼마나 예쁘던지 모두가 노을 지는 하늘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자연과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매 순간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너무 좋아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들 중의 하나.



2021.11.01 - 혼자만의 시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땐 너무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막상 혼자 있으니 좋다가도 한 번씩 아쉬울 때가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한다.

지내다 보면 또 어느 순간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결국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하고 역시 혼자가 좋다.




2021.11.05 - 외로움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갑자기 혼자 있다 보면 떠오르기도 한다.

행복한 순간,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할 때면 '누군가와 함께였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둘이 있는데도 외로움을 느꼈던 난 그 감정과 그때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에.

혼자 느끼는 외로움이란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이게 더 나아.

그 순간은 아주 잠깐이고 혼자일 때가 훨씬 좋고 편하니까.





2021.11.12 - 당당한 걸음


제주도에서 막 도착한 날. 리무진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갔다.

제주에서는 산, 갈대, 바다, 석양 보느라 몰랐는데 완연한 가을이었다.

주황색, 노란색, 갈색 색색깔로 변해있는 나뭇잎 보는 재미로 산책을 했는데 순간 놀랐다.

내 걸음에 힘이 생겼고 당당해진 모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전엔 늘 생기가 없고 힘이 없었다. 걷는 모습에서도 느껴졌는데.

내가 달라졌다. 혼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생기고

마음이, 허전했던 내 마음이 꽉 채워졌나 보다.

내가 당당해진 걸음으로 산책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말 좋은 일이다. 잘 된 일이다.

앞으로도 더 당당해진 걸음으로 세상에 나아가기로 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동안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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