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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Mar 03. 2022

검은봉지안 꾸깃꾸깃 깃든 시아버지의 정성(3000만원)

한푼두푼 세월을 입은 시아버님의 흔적


"아버님, 저희 제주도 내려가요"



 

 이 말을 접한 아버님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서운한 것이 맞으실 것이다.



아들 하나 있는 것이 그마저도 제주도 내려간다고 하니

서운함을 넘어 괘씸했을지도 모른다. 분노심이 차올랐을지도 모르겠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도 충분히  그러하셨을 것이다.


일하는 며느리란 핑계로 연락도 자주  하고 방문도 못 드렸는데...

제주도 내려가면 그 횟수가 더 줄어들거라 예상하셨을 것이다.



순간 집안 공기가 무겁고 어두웠고 침체되었다.


 허공을 바라보시고 한동안 말이 없으셨던 아버님은 장롱 맨 아래 밑 칸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더니 검은 봉지를 툭! 건네주셨다.




검은 봉지 안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아버님 이게 뭐예요?"




"우리 손자 000  대학 등록금 주려고 안 쓰고 모아둔 거다"



검은 봉지를 열어보니 세월의 흔적이 깃든

500만원씩 든 꾸깃꾸깃한 봉투가 6개나 들어있었다.



심히 놀랐다. 적은 액수의 돈이 아니기에...





그랬다. 아버님은 시어머님과 오래전 헤어지시고 홀로 사시는 2급장애인이시다.

젊으셨을 때, 철로에서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으셨다고 하신다. 그때의 충격으로 한동안 악몽에 트라우마에 시달리셨다고 하셨다. 그 시기이후  지금까지 의족에 기대어 거동을 하고 계신다.



아들내미가 어렸을 적 나에게 물었다.

"엄마, 할아버지는 왜 한쪽 다리가 딱딱해?"

"응. 할아버지께서 젊으셨을 때  사고로 다리를 잃으셨대."

의족이라고 하는데 아프신 할아버지의 다리가 되어 걷게 도와주시는 거야."

"할아버지 불편하시겠다"



아버님은 딱딱한 의족에 기대어 불편한 몸으로 한평생을 감내하며 살아오셨다.

불편한 몸으로 경제활동에 자유롭지못한 아버님은 정부에서 주는 장애인 보조금과 우리 부부가 그동안 드렸던 용돈을 몇 년 동안 한 푼 두 푼 모아 두셨던 것이다.




이 돈이 어떤 의미와 가치의 돈인지 알기에...

죄송스러움에 받지 못한다고 한사코 밀어냈다.



"제주도 내려가면 돈 많이 필요할 텐데 거기에 보태라"




"괜찮아요, 저희 돈 있어요. 아버님 필요하실 때  쓰셔요!" 앞으로 필요하실 상황이 많을텐데요.




무심한 듯 완강히  밀쳐내는 아버님의 행동에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었다.


한없이 죄송스럽고 염치가 없었다.



우선 5개의 봉투만 받고 1개의 봉투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갖고 계시라고 말씀드렸다.




지난 과거의 내 행동이 참 철없고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결혼식 때, 신랑 측 부모님 자리 석에 시어머니 없이 홀로 앉아계시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까 결혼식을 하지 말까도 고민했었다.

결혼 후엔 아버님 용돈과 월세를 드리면서 불평을 했고, 장애인, 경제적 능력이 없는 시아버지라 창피해했다.


일하는 며느리 바쁜데 연락을 자주 바라시는 시아버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아버님의  깊은 내면은 들여다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상의 후 이 돈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혹여나 아버님 편찮으실 때 지불해야 될 병원비나

앞으로 닥칠 미래의 사정의 여의치 않을 때 활용하기로 했다.



아버님의 자식, 손자들을 향한 마음만 감사히  받기로 했다.


물질만능 자본주의 시대, 돈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간사해지는 내 자신의 내면을 보고 쓴웃음이  났다.


아직은 성인으로서 한참 덜 성숙하고 부족한 인간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집안에 시집와서

고생하고 산다는 생각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 만연했었고 지배적이었다.




그동안 불평, 불만으로 가득 채워졌던 좁쌀만큼이나 작았던  내 마음이

얼마나 짧고 미련했는지를 시아버지의 정성과 깊은 생각에  처참히 무너져 버렸다.



부정적이고 못된 마음의 며느리, 생각이 짧고 부족한 며느리 ...부디 용서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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