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사람들은 '행복'을 무엇이라 생각하나

자아실현을 하기 쉬운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y 파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를 밥먹듯이 하는 나라, 바로 덴마크다. 나는 사람의 행복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덴마크 행복 사회의 비결을 알아내겠다는 것이 덴마크 한달 살이의 제일 큰 목적일 만큼 관심도가 높은 주제였다. 처음엔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에서 시작했다. 평온하고 느긋해보이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이들이 매일 즐거운가?'라는 질문을 해봤을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강하지 않은 편이었다. 스페인에 여행갔을 때 느꼈던 활기와 즐거움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였고, 그럼 겉보기에 아주 즐거워보이는 남부 유럽 국가들과 이 나라의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들이 정의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여러 덴마크 사람들에게 물어보러 다녔다. 학교에서 'Dannish conversation cafe'라는 시간을 마련해줘서, 덴마크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공식적으로도 가질 수 있었다. 여러 답변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명쾌한 답변 하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을 기반으로 한 답변이었다. 덴마크 사회는 1단계인 생리적 욕구와 2단계인 안전의 욕구를 모든 국민에게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다른 국가 사람들보다 행복을 향한 여정의 출발점이 높다는 답변이었다.


image03.png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 출처 - 틴매일경제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은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현되는 계층적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행복의 핵심 요소는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다. 나도 행복의 요소가 자기이해, 자기수용,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이론에 깊이 공감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이 답변이 아주 명쾌하게 와닿았다. 자아실현을 추구하기까지 앞선 네 단계의 충족이 필요한데, 덴마크의 복지정책은 전 국민이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때문에 덴마크 국민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자아실현에 도달하기가 쉬운 거다. 당장 먹을 음식이 부족하고, 살 집이 없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관찰한 바로는, 덴마크 사회에서는 나머지 두 단계도 상대적으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 같다. 1, 2단계가 기본적인 생존 욕구라면, 3, 4단계는 관계/사회적 욕구라고 볼 수 있는데, 덴마크 사회는 매우 고신뢰사회이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소속집단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폴케호이스콜레'만 봐도 그렇다. 100여명의 친구들이 한 학기 이상 함께 살면서 학교생활을 한다면 당연히 끈끈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Conversation cafe'에 참여한 덴마크인들 중 폴케호이스콜레에서 만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덴마크에 70여개의 폴케호이스콜레가 있기 때문에 덴마크 내에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최소 한 그룹은 있다는 거 아닌가.


이런 부분 때문에 덴마크 사람들은 국제학교인 IPC에 오면 전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덴마크 학생들이 많은 폴케호이스콜레를 선택한다고 한다. 세계의 친구들은 학기가 끝나면 만나기 어려워지지만, 덴마크 학생들은 이후에도 내내 가까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이 부분이 덴마크 사회의 폐쇄성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 부분은 다음에 다뤄보도록 하고, 아무튼 중요한 건 폴케호이스콜레를 경험한 이들은 아주 든든한 친구 집단과 평생 함께할 수 있다는 거다. 정말 부러운 일이다.


심지어 덴마크에는 이런 제도가 더 있다. '에프터스콜레'인데, 이는 14-17세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 전에 1~2년 간 다닐 수 있는 기숙학교다. 폴케호이스콜레의 청소년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덴마크 공교육에서는 시험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고, 동등한 친구로 여기며 '공동체' 감각을 기를 수 있다. 물론, 교사들이 성적을 가지고 학생을 칭찬하는 일도 없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운동을 잘 하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미술을 잘 하는 등 아이가 잘 하는 여러 가지 일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한국의 학생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으로 등수가 매겨지고, 공부를 잘 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사람을 '존재 자체'로 귀하게 여기도록 배우고, 끈끈한 공동체 경험을 하다 보니 사회적 욕구도 보다 쉽게 채워지는 것 같다.


게다가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주어진다. 자아실현은 자기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덴마크 사회에서는 자기이해와 진로탐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도권 내에서 주어진다는 걸 발견했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왜 폴케호이스콜레에 갔냐'고 물어보니, 다들 진로고민이 있어 갔다고 답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됐다. '덴마크의 공교육은 우리나라와 달리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주지 않나? 그런데 왜 진로고민을 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GPT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답을 찾았다. 자기이해와 진로고민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제라는 것.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쭉 살아온 내 사촌동생도 진로고민을 한다고 했으니,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다만 덴마크는 진로고민이라는 것이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하고, 제도적 차원에서 진로고민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두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갭이어를 갖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데 반해 덴마크 사회에서는 에프터스콜레 진학 비율이 20~25%나 되고, 연간 4만여명이 폴케호이스콜레 코스를 수강한다고 한다. IPC에서 만난 다른 나라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미국의 경우에도 갭이어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긴 하지만 빨리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강하고, 어른들의 잔소리도 있다고 하니, 덴마크의 경우가 확실히 특별한 것 같긴 하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덴마크에도 당연히 더 인기있는 직업군이 있고, 대부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인기가 있으며,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경쟁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모든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대부분 동일하다. 단지 그 비율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만들고, 인식의 차이가 곧 문화의 차이, 그리고 행복도의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KakaoTalk_20250922_164347860.jpg
KakaoTalk_20250922_164347860_01.jpg


이러한 자아실현 외에도 덴마크 사회를 행복하고 안정된 사회로 만드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높은 정치적 투명성, 사회적 신뢰, 기독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약자를 돕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덴마크는 국교가 개신교다), 사람 친화적인 주거 건축과 도시 설계,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정책 등등. 이런 요소들은 하나씩 다음 글을 통해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동시에, 덴마크도 천국은 아니다. 과거 그린란드를 비롯한 식민지 국가들에 끔찍한 일들을 자행했고, 폐쇄성이 높아 다양성과 인종차별 관점에서는 논란이 있다. 특히 노동력과 이민자라는 주제를 두고 생각했을 때는, 이 사회가 앞으로 발생할 필연적인 갈등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가 궁금하다. 인구는 590만명 정도로 한국의 1/10정도이고, 면적은 한국의 40%정도라는 커다란 차이점도 있어서 우리가 덴마크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여러 요소들은 '행복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좋은 인사이트를 준다. '이런 곳에서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동네들이 곳곳에 많았던 코펜하겐, 소탈하고 탈권위적이었던 덴마크 정치인, 좋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IPC의 선생님들까지. 오랫동안 나의 '또 가고 싶은 나라' 목록에 들어있지 않을까.


KakaoTalk_20250922_164347860_02.jpg


이전 01화프롤로그. 행복의 비밀을 찾으러, 덴마크 한 달 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