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친구들 앞에서 일제강점기와 위안부를 이야기하기까지
지난 편에서는 덴마크인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사회는 어떻게 행복하기 쉬운 사회가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앞으로 차례차례 교육, 직장, 정치 등 하나하나의 요소들에 대해 정리해보려 하는데, 그 전에 IPC에서 경험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일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이 일화가 폴케호이스콜레의 가치를 정말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IPC의 핵심 가치(core value)는 이렇게 여섯가지다. 'Respect, Equality, Democracy, Peace, Empathy, Sustainability', 그리고 이걸 한 마디로 종합하자면 결국 '사랑'이라 느낀다. IPC는 촘촘한 프로그램으로 이 가치를 가르친다기보다는, 선생님들과 스탭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가치가 보여진다. 지난 게시글에서 이야기했던 '규칙은 있지만 그걸 지키지 않는 이에 대한 페널티가 없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변화될 수 있게 한다'는 부분도 이러한 맥락이고, 'mandatory activity'라고 강조하는 활동들도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 끌고 데려오는 경우는 없다. (*단, 선을 넘었을 경우 칼같이 퇴교시킨다고 한다) 반면 누군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위한 기여를 할 경우, 매일 아침 있는 'Morning Fellowship'과 그룹 스냅챗에서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감사를 표한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일화는 이 'Morning Fellowship'(이하 MF)때 진행한 발표에 대한 내용이다. MF는 매일(주말 제외) 아침 8시 30분마다 30분간 진행되는 조회시간 같은 건데, 노래를 한 곡 다 같이 부르고, 그 날의 ToD(Teacher of Duty, 당직 같은 느낌) 선생님이 세계의 뉴스 1개를 들려준다. 특히 짐바브웨 출신의 수잔 선생님이 트럼프와 남아공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집단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뉴스를 들려줬던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뉴스에서 다뤄지지 않은, '현상 이면의 사회구조'에 대해 다루며 남아공의 흑인-백인 인구 비율과 부의 편중에 대한 이야기였고, 아프리칸에게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 내가 정말 IPC에 왔구나'를 느끼게 했다.
IPC의 3주 썸머 코스는 언어를 배우는 코스라서 영어 코스와 덴마크어 코스로 나뉘어있는데, 영어 코스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5개 조로 나뉘어 직접 이 MF에서 뉴스를 발표해야 한다. 영어로 발표해보는 기회를 늘린다는 취지였는데,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꼭 우리나라의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직 아시안 외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보니, 전 세계의 친구들 앞에서 우리나라의 아픔과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싶었다. 게다가 앞 팀이 '1945년 오늘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진 날'이라는 발표를 해서, '아 이거 진짜 꼭 한국 독립 이야기 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인 친구들이 너무 많다는 것. 90여명 중에 17명이 일본인이었고, 우리 조도 일본인 4명에 나 혼자 한국인, 그리고 이탈리아인과 벨기에인 1명씩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일본인 친구들이 다들 너무 착하고 좋은 친구들이었다는거다. 팀원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광복절을 주제로 발표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말해야할까를 고민하며 '발표를 준비하는 날'을 1주일간 준비했다. 마침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6분의 유해가 한국으로 송환된다는 기사가 나서, 그걸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이 당한 억압, 위안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GPT와 함께 영어로 열심히 준비했다.
발표 준비 시간에 조심스럽게 '한국이 올해 광복 80주년이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친구들이 다들 흔쾌히 좋다고 해줬다. R은 '우리가 저번에 히로시마 이야기 했으니까, 이번에는 너희 이야기를 할 차례가 맞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T는 발표가 당장 다음날이었기 때문에 내가 내용을 마저 준비할 수 있도록 내 차례였던 저녁 설거지당번을 대신 해주기도 했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방에서 열심히 내용을 작성하고 있던 중, R에게 왓츠앱 메시지가 왔다. 내일 발표하기 전에 먼저 발표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가능하지!하고 갔는데, 가보니 일본인 친구 4명이 동시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괜찮다고 했는데, 준비하다 보니 불편감이 올라온 것 같았다. '위안부는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냐. 이걸 발표하긴 좀 그렇다', '아침부터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발표하는 건 별로인 것 같다. 다른 주제를 하면 안되냐' 등등의 의견이 있었고, 그 친구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도 입장을 굽히진 않았다. 서로가 좋은 사람이라는걸 너무 잘 알고 있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게 되어 참 힘든 상황이었다. 남자인 Y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나를 포함해서) 모두 눈물을 보였다. 그 감정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데, 나는 (역사적)억울함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마음이었던 것 같고, 일본인 친구들은 혼란스러움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마음이었을 것 같다.
2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발표는 그대로 하고, 일본의 입장도 마지막에 넣자'는 결론으로 마무리했다. 일본의 입장은 우리가 다들 알고 있는 '일본은 이미 돈으로 배상했다'는 내용이었는데, 아주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내용 발표 안하면 안되겠냐'에서 여기까지 와준 친구들의 노력과 마음을 알기에 그러자고 했다. 마지막엔 태극기와 일장기가 같이 있는 사진으로 발표자료를 마무리했다.
이야기를 마친 뒤 방에 돌아가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를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나의 일본인 룸메이트 H가 나를 꼭 안아줬다. 정말 고생 많았다고. 내가 우리 조 친구들이 불편한걸 꾹 참고 그냥 넘길 수도 있었을텐데 용기내서 대화를 신청해준 것이 고마웠다고 하니, H는 일본인들이 정말 싫은소리, 자기표현을 안하는데, 용기낸 그 친구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더욱 우리 조 친구들에게 고마워졌다.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다른 친구들이 잠시 쉬러 자리를 뜬 사이 T가 나에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툰 영어로 '네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어. 고마워'라고 말하고, 번역기를 돌려서 '그런데 아직 소화하기가 좀 힘들어'라고 말했던 순간이다. 그 문장을 보자마자 어떤 마음인지가 너무 느껴져서 나도 왈칵 눈물이 났고, T의 손을 꼭 잡고 연신 'Thank you so much'라고 말했다. 준비를 마친 뒤 각자 자러 가면서 R도, S도, Y도 나에게 덕분에 많이 배웠다, 4대 1의 구도를 만들어 정말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말해줬다. 다음날 우리는 발표를 잘 마쳤고, 모든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았다. IPC의 가치를 잘 보여줬다는 칭찬이었다. 발표를 끝내고 자리에 앉으니 눈물이 났다. 옆을 보니 다른 친구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발표 끝나고 노래를 시작했는데 하필 이 날의 노래가 'What a wonderful world'여서, 우느라 거의 한 소절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던 것 같다.
오프닝 멘트를 신경써서 준비했는데, R은 그 멘트를 듣고 그때부터 울컥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그대로 공유해보려 한다.
Next Friday, August 15th, 2025, is my country’s 80th Liberation Day. Just three days ago, I read some wonderful news: the remains of six Korean independence fighters who died abroad will finally return home—after 80 years.
While I was happy to share this news, I was also worried and even scared to choose it as today’s topic. Four of my teammates are Japanese, and many other Japanese friends are here. I truly like them—I never want to hurt them.
Last night, we stayed up past midnight talking about this history. We discovered that we had grown up with different educations, which shaped different perspectives. It was not an easy conversation, but it was really precious opportunity to share our views, reflect deeply, and understand each other better.
I hope you can listen to this news with the same understanding and empathy we shared last night.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광주 사람으로서 국내에서 겪었던 어려움도 공유했었는데, 절대 그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싶어서였다. 나는 경북 의성에서 일한 광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계엄이 터졌을 때, 의성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나에게 '사실 나는 5.18에 대해서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정도로만 배우고 넘어가서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광주 여행을 가서 5.18 기록관과 전일빌딩을 가서 보며 처음으로 5.18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해줬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서 이렇게 시각이 다른데, 하물며 나라가 다른 우리는 오죽하겠냐'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꽤 친구들의 마음을 울렸던 듯하다. 그 순간에 내가 광주사람이어서 한국에서 이런 경험을 먼저 해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발표가 끝나고 수업에 갔을 때, 우리 반의 일본인 M은 나에게 자신이 예전에 영화 '말모이'를 정말 인상깊게 봤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감비아, 네덜란드, 덴마크,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친구들에게도 발표가 정말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들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며칠 뒤 스웨덴 사우나에 혼자 갔다가 일본인 친구 U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다. 일본에서 받는 교육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나라면 4명이 일본인이고 혼자 한국인인 상황에서 그렇게 용기내지 못했을 것 같은데 넌 정말 용감하다. 용기내줘서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였다. 사실 그 전날 다른 한국인분으로부터 '본인 조에서는 영국의 노예해방 선언에 대한 내용을 하자고 했는데 U를 비롯한 일본인 3명이 표정을 확 굳히며 자기들끼리 일본어로 계속 이야기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그 U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준거다. 게다가 '우리 조의 Y가 나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는 이야기를 연신 했었다'면서, 그 친구가 내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다고 말해주는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너무 좋아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사우나를 마치고 나와 탈의실에 왔을 때, 라디오에서 What a wonderful world가 나왔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정치적 이슈 앞에서 너무도 쉽게 '일본'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져 쉽게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곤 했는데, 이제 나에게 '일본'은 이 소중한 친구들 한명한명의 얼굴이 되었다. 나에게 경상도는 의성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되었듯이, 그리고 그들에게도 전라도가 나의 얼굴이 되었듯이, 이제 우리에게 일본과 한국도 서로의 얼굴이 되겠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혐오와 차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루빨리 서로가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