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덴마크도 천국은 아니었다

'가장 행복한 나라' 타이틀 뒤에 숨겨진 불평등

by 파도

지금까지 덴마크의 좋은 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지만, 아쉽게도 덴마크도 완벽하진 않았다. 역사적 과오가 있고, 불평등 문제와 여타 사회문제들이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그린란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한국인에게 그린란드는 최근 트럼프가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사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들어본 정도일 거다. 나도 그 사건을 통해서 그린란드에 대해 '아 그린란드가 가진 자원이 되게 많은가보구나' 정도의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덴마크를 다녀오고 나서 그린란드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됐다.


덴마크는 1721년부터 1953년까지 그린란드를 식민지배했다. IPC에 그린란드인이 와서 덴마크의 그린란드 식민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덴마크인들이 저질렀던 만행이 상상 이상이었다. 예를 들어 'Little Danes experiment'라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는 그린란드인 아기들을 덴마크로 데려와 고아라고 속이고 덴마크인 부모에게 양육받게 했고, 16세가 되었을 때 그린란드로 돌려보낸 실험이다. '덴마크화된 그린란드인 엘리트'를 양성한다는 명목이었으나,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그린란드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했고,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거나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덴마크 정부는 2020년도에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하는데, 정말 끔찍한 실험이었다는 것에는 변동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사건은 당시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얼마나 미개한 인종으로 취급하였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그린란드의 인구 증가 억제를 목표로 여성들에게 강제 피임 시술을 진행하기도 했다. 덴마크 정부는 불과 얼마 전에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피해자 중에서는 당시 12세의 어린 소녀들도 있었으며, 내가 그 때 강의에서 듣기로는 자궁에 코일을 집어넣었다고 했다. 얼마나 끔찍한 짓인가. 이 사건 이후 그린란드의 인구는 급격하게 감소했고, 지금은 5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군 하나 정도의 인구인거다. 워낙 인구가 적다 보니 지금도 그린란드는 자치권은 있으나 온전한 하나의 국가라고 기능하기에는 덴마크의 영향 아래에 많이 있는 상태다.


그 외에도 자원 침탈, 문화 파괴 등의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 강의를 진행했던 그린란드 여성의 말에 따르자면, '덴마크로 인해 그린란드에 현대화가 많이 일어났으나, 그게 그린란드의 고유 문화를 많이 파괴했다'고 한다. GPT와 함께 좀 더 알아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전통 이누이트 문화·언어를 약화시키기 위해 덴마크어 사용을 장려하고, 덴마크 방식의 교육·거주·행정체계를 도입했다. 예컨대, 전통 어촌·사냥터 중심으로 분산 거주했던 그린란드인들을 도시 또는 행정 중심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런 정책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지배·통제 구조를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또한, 그린란드 내 무역을 독점하며, 어획물·고래기름·해양동물 가죽 등 북극 자원을 덴마크 중심으로 통제·이용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참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상황이 참 묘했다. 덴마크 학교에 와서, 덴마크의 만행을 알리는 강의를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함께 들었고, 거기에는 과거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나라들에서 온 친구들과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내 옆에는 일본인 친구들이 앉아있었고, 그 옆에 앉았던 필리핀 친구는 그린란드 여성에게 질문을 하다가 울컥하더니 강의가 끝난 뒤에도 한국인 여성분께 안겨 한참을 울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덴마크에 대한 다른 인식을 갖게 했나요?'라는 질문에 내 옆에 앉았던 일본인은(40대 정도인 여성)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그 시대에는 다들 그랬다. 그래서 덴마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진 않았다'고 답했고 난 그 답변이 참 불편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내가 일제강점기에 대해 발표한 후, 나에게 다가와 '영화 '말모이'를 참 인상깊게 봤다. 오늘 발표 정말 잘 들었다'라고 말해주었다. 이들은 다들 참 좋은 사람들이고, 우리는 지금 모두 친구이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서로를 침탈했고, 누군가 누구에게 끔찍한 고통을 가했고,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지만 식민지배를 받았던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머물러있다. 과거와 현재, 아픔과 우정이 뒤섞여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한참을 잠겨있었다.


그 전 날 들었던 강의에서는 여전히 덴마크 안에 그린란드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한 덴마크인 홈리스가 길에 쓰러져 있었고, 그를 발견한 사람들이 몇 시간에 걸쳐 수 차례나 119에 신고했지만 119에서는 '혹시 그가 그린란드인처럼 보이지는 않냐'는 질문을 하며 출동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그는 길에서 사망했고, 이는 큰 논란이 됐다고 한다. 덴마크 내에서 그린란드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홈리스 중에 그린란드인이 많기도 하고, 알코올에 중독된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린란드인의 문제라고 하기엔, 지금까지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자생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두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강의를 마친 이후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린란드인으로서 덴마크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복잡하다'고 답했다. 본인은 덴마크에 사는 그린란드인이고, 덴마크인과 결혼도 해서 그린란드-덴마크인인 아이들도 있으며, 덴마크인 친구들도 많다. 자신은 그린란드인이라고 차별을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지만, 자신의 환경(학력, 직업 등) 때문인 걸 알고 있고, 여전히 많은 그린란드인들이 차별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덴마크도 좋지만, 여전히 자신은 그린란드에 돌아가서 그 고향의 아름다운 눈과 풍경을 볼 때 편안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감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식민지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브런치북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유럽에 몇 달 있으면서, 이들이 누리는 복지는 결국 옛 제국주의 시절에 벌어놓은 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임을 느끼며 우리나라가 이만큼 선진국 대열에 올라온 것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었다. 이 강의를 들은 뒤에 덴마크도 결국 똑같은 서구 열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실이 지금 덴마크의 복지제도와 공동체적 문화가 훌륭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가장 행복한 나라'의 민낯을 본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은, 내가 이 이야기를 그린란드 가서 들은 게 아니라 덴마크에서 들었다는 것. 여전히 덴마크 내에 그린란드인을 차별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교육과정에서는 이러한 과오를 인정하고 제대로 교육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 그린란드인이 들려주는 덴마크의 식민지배 이야기를 일본인, 베트남인, 영국인, 감비아인, 포르투갈인, 과테말라인, 스페인인, 필리핀인, 베트남인 등등..과 함께 덴마크에서 들었던 경험은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