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속 또 다른 국가?!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나

크리스티아나는 게토인가 자유의 상징인가

by 파도

덴마크에서의 마지막 주말, 코펜하겐으로 혼자 '건축' 테마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전날 들은 '덴마크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GPT의 도움을 받아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있는 지역들을 추렸는데, 웅장한 건축물 하나만 있는것보다는 주민친화적인 재건축 단지가 나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나도 처음에는 주민 주도 DIT방식의 재건축 마을을 보고 싶어서 가려고 했는데, 알아볼수록 굉장히 혼란스럽고 흥미로운 곳이었다.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나는 1971년 설립되었고, 여의도의 1/3정도 되는 크기의 지역에 800~1,000명 정도가 거주하는 자치 공동체다. 덴마크 군이 사용하던 부지를 철수하면서 생긴 공터가 있었는데, 거기를 히피, 예술가, 무정부주의자, 홈리스 등이 무단 점거하며 자치 공동체를 선언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덴마크 정부가 철거 명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수십년간의 논쟁 끝에 이 공동체는 주민들의 공동 기금을 모아 토지를 매입하며 법적 기반을 마련해 지금은 덴마크 정부에서도 그 자치성을 인정하고 있다.


어느정도의 자치성이냐 하면, 크리스티아나는 덴마크 정부에 국방비를 납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건 아니고, 공공요금은 납부하며, 덴마크에서 소득활동을 할 경우 그에 해당하는 세금은 납부한다고 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크리스티아나 내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는 덴마크정부에 세금을 납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크리스티아나의 모든 주민들은 공동체기금을 납부하고, 그 기금을 통해 크리스티아나의 공동체 유지, 건물 유지보수 등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로 인해 덴마크 내부에서는 '크리스티아나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이 나온다고 하지만, 이곳을 찾기 위해 덴마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많다 보니 크리스티아나는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고 한다. 크리스티아나의 자치 규칙에 대해서는 이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참고로, 덴마크 아티스트 '루카스 그레이엄'의 보컬이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04.jpg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03.jpg
크리스티나에 들어가는 방향(좌), 나가는 방향(우). 나가는 문에는 '당신은 이제 EU로 들어갑니다' 라고 써져있다.


크리스티아나는 코펜하겐의 Christianshavn 역에서 내려 5분정도만 걸으면 나온다.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의 코펜하겐과 달리 그 입구부터 히피스러운 느낌이 물씬 난다. 처음에는 사진찍으면 안되는 구역도 있고, 여자 혼자 다니기에 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해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의 자유로움과 순수함이 느껴져서 나도 마음을 좀 놓고 그곳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다.


크리스티아나에 대해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Pusher Street에 관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만은 대마초 거래가 합법이었다고 한다. 'Pusher Street'라는 시장 거리에서 수십년 간 대마초를 포함한 불법 약물 거래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덴마크는 대마초 거래가 불법이다) 처음에는 덴마크 정부도 어느 정도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게 히피 문화와 크리스티아나 자유정신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는데, 점점 개인 간 거래를 넘어 조직화된 범죄 세력이 마약 유통을 장악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갱 간 충돌, 폭력 사건 등이 발생했고, 2016년에는 경찰관이 총에 맞는 사건이, 2023년에는 사상자가 나온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크리스티아나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곳의 폐쇄를 두고 치열한 찬반공방이 펼쳐졌다고 하는데, 크리스티아나는 다수결이 아닌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합의민주주의 제도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이 '합의'는 '강한 반대가 없을 때까지 토론을 계속하는 방식'으로, 크리스티아나는 이 방식에 대해 '우리는 아무도 이 결정 때문에 살 수 없다고 느끼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표현한다. 단순히 '싫다'는 게 아니라 '이 결정이 공동체의 기본 가치나 나의 생존을 침해한다'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배제하고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 있는 반대가 중요하며, 그냥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몇 년간 결론이 나지 않은 안건도 존재하며, Pusher Street에 대한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3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은 이것이 크리스티아나 공동체의 존립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결론을 내린 뒤 덴마크 정부, 경찰과 협력하여 Pusher Street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자치'라는 단어는 지방자치, 주민자치에 대해 많이 들어왔기에 익숙하긴 하지만 실제 그 효용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자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06.jpg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14.jpg
Pusher Street가 폐쇄됐음을 알리는 안내문과, 대마초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벽화


덴마크 사람들은 크리스티아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추후 니코(예전에 소셜 에듀케이터로 활동했었던 선생님)에게 물어보자 본인은 크리스티아나를 마음의 고향처럼 생각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대립적인 주제라고 한다. 범죄자 소굴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며 말이다. 특히 나는 덴마크 정부에서 왜 크리스티아나의 자치권을 인정하는지 궁금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크리스티아나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몰아둠으로써 그들을 감시 아래에 두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덴마크 의회 내에서도 크리스티아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테지만, 정부의 입장에서도 크리스티아나의 존재가 어떠한 효용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KakaoTalk_20251217_095826749.jpg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02.jpg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05.jpg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16.jpg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나의 풍경들


크리스티아나에 대해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어떤 면에서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나답게 살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크리스티아나 주민들의 공동체 정신에 진심어린 존경을 보내고 싶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을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늘상 겪으면서도, 자신들을 향한 편견어린 시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믿는 가치, 살고 싶은 삶을 위해 '보통과는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촘촘한 자치규약을 만들고, 거기에 합의하고,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몇년이 걸리든 '아무도 소외당하게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십년동안 치열하게 지켜내고 있는 자치 공동체.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KakaoTalk_20251217_095826749_17.jpg 내가 느낀 크리스티아나를 이 사진 한장으로 표현하고 싶다. 사랑, 자유, 자연, 평안


이전 08화폐쇄적인 덴마크 사회, 앞으로도 지속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