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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Dec 22. 2020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의 반란》

《엄마의 반란》,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음, 책읽는 고양이, 2020

이 책에는 총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제일 처음 <엄마의 반란>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인데, 그건  아마 지금의 내가 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아내가 남편의 허락 없이 하는 행동 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던데 이 야기는 그 당시엔 꽤 놀라운 게 아니었을까.


결혼 전부터 새집을 지어주겠노라 약속했던  남편은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도록 아내의 집에 대한 요청을 무시하며 또 하나의 창고를 짓고 소를 산다.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여. 이에 빡친 아내는 남편이 며칠 집을 비운 틈을 타 모든 집안 살림을 새로 지은 창고로 옮겨 집보다 더  좋은 창고에서 새 살림을 꾸리고자 하는데, 이에 마을이 발칵 뒤집힌다. 남편에게 허락도 안 받고 저게 뭐하는 짓이여.. 보다 못한  동네 목사가 이 아내를 찾아오는데, 이때의 아내는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긔! 두려울 것이 없다!



"목사님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만, 사람 간에도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요. 저는 수십 년 간 교회에 다닌  사람입니다. 저도 심신이 멀쩡한 사람이니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저는 신을 믿고 살 테니, 신이 아닌 분들은 제게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으셨음 합니다." -<엄마의 반란>, p.34-35




이  목사의 '선의'는 순전히 자기 기준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이 책에 실린 마지막 단편 <엇나간 선행>과도 통한다.  <엇나간 선행>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매가 나오는데, 집은 오래되고 낡았으며 한 명은 시력을 잃었고 한 명은  귀가 잘 안 들리고 무릎 관절이 나갔지만, 그들은 그들이 수확한 얼마 안 되는 농작물로 끼니를 해결하며 사는 이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 거다. 시력을 잃은 동생은 그런 삶 중에서 가끔은 빛을 느끼기도 하면서 행복하다 여기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들이 더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더 좋은 음식과 더 좋은 환경을 제공받아야 한다면서, '그들을 위해' 도움의 집으로 이들 자매를  '싫다는데도' 데려가는 거다. 그곳의 음식의 질은 자매들이 평소에 해 먹던 것보다 나았고 그곳에서 제공해주는 옷도 그러했지만, 그러나  이 자매는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고 겉돌며 내내 그들의 초라한 집에서 살았던 생활을 그리워한다. 그때는 빛이 보일 때도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빛이 보이지 않노라고 얘기한다. 저렇게 작고 낡은 집에서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삶보다 이쪽의  삶이 더 나을 것이다, 라는 것은 누구의 기준일까. 제목 그대로 '엇나간' 선행을 보여줌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볼  때면 '반다나 시바'의 에코 페미니즘이 생각난다... 개발되지 않은 곳에 사는 삶은 불행해, 개발해야 해!!)



<갈라  드레스>는 가난해서 외출복을 별로 갖지 못한 자매가 굳이 외출해야 할 때에는 하나 있는 드레스의 레이스 장식을 바꿔가며  번갈아 입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웃집의 가난한 다른 아가씨는 그들의 그 드레스가 너무 부럽고. 자신들의 하나뿐인 드레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걱정하는 자매와 그 드레스가 부러운 다른 여자가 나오는데, 미묘한 심리, 그러니까 시기와 질투에 이어서  죄책감까지 이야기 속에 드러난다.



가장 압권인 이야기는 세 번째 단편  <뉴잉글랜드 수녀>였다. 와, 이 이야기는 읽을수록 흥분하게 되는데, 이거 뭐야 진짜, 너무 좋네. 그러니까 혼자  사는 여성 '루이자 엘리스'는 자신이 혼자 있을 때에도 자기만의 격식을 차리고 자기만의 루틴이 있으며 자기만의 룰이 있다. 자기  혼자 차를 마실 때에도 도자기 그릇을 꺼내놓고 자기를 잘 대접하며, 바느질용 앞치마와 손님 접대용 앞치마가 따로 있다. 책들이  놓이는 순서도 따로 정해져 있어서 그것이 어긋나면 살짝 불쾌해지곤 하는데, 그녀의 집에는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남자 '조 대깃'이  있다. 조 대깃은 루이자의 룰을 '뭘 그것 가지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루이자는 그런 그의 태도에 살짝 날카로워지는데, 딱히  다정하지도 좋아 보이지도 않는 그들의 관계는 무얼까, 왜 굳이 찾아드는 걸까, 했더니 알고 보니 이들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 거다.  응? 약혼한 사이라고? 그런데 사이가 왜 이래? 어색 폭발인데, 딱히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도  그럴 것이 아아, 이들의 결혼 약속은 15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15년 전에 이루어졌는데 내내 결혼을 안 하고 있는 거라면 서로  익숙해지고 어쩌면 지겨워졌을 만도 하지만, 그런데 15년 전 결혼을 약속하고서는 조 대깃은 아아, 돈을 벌러 호주로 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최근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15년 전에 약혼했으나 14년간을 떨어져 있었던  것. 그렇게 조는 호주에서 돌아왔고, (아아, 호주여... 갔다면 돌아오는 것이여... 호주에는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알았냐)  이제 돌아왔으니 그녀랑 결혼하는 일만 남겨두고 있는데, 14년간 떨어져 산 그들이 오래 전의 시작되던 그 사랑 다시 퐁퐁 샘솟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고 내심 가슴속에 서로 어떤 압박감.. 이 쌓여가는 것이다. 



두  사람은 15년 간 이어온 교제 기간을 끝내고 한 달 후에 결혼할 예정이었다. 15년 중 14년 동안은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편지 교환도 거의 없었다. 조는 돈을 벌기 위해 호주에 갔고, 돈을 벌 때까지 십 수년 세월을 호주에서 살았다. 돌아오는  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줄 알았다면 50년을 더 그곳에서 머물거나, 아예 루이자와 결혼할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돈은 14년 만에 다 모였고, 이제 조 대길은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을 묵묵히 기다려준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뉴잉글랜드 수녀>, p.79



우리의  루이자는, 그 시간 동안 혼자 지내면서 나름 혼자 지내는 방법을 터득했고 또 익숙해져서 평온하기까지 하단 말이야. 그런데 이제  얼마 후면 저 남자랑 결혼해서 살아야 하다니, 아아 돌아오다니, 어쩐지 쫌 실망이네...라고 나름의 삶에 길들여진 루이자는  생각한다. 답답하다, 그리고 시어머니 될 사람은 나랑 타입이 맞지 않아서 나에게 잔소리할 텐데, 아아, 루이자는 답답해..  답답합니다.. 그렇지만 결혼을 안 한다고 하면 조 대깃은 상처 받겠지, 우리 15년 된 사이잖아, 떨어져 있다가 돌아와서 약속을  지키려고 하잖아, 아아, 그렇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새삼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했는지를, 그 고요한 삶에  조 대깃이 찾아들어 깨지고나서부터 깨닫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오, 삶이여, 오, 혼자 익숙하고 안락한 삶이여, 오, 나의  평온이여!



루이자  엘리스가 자기만의 권리를 팔아버렸거나 자기가 누리는 유일한 만족이 흔들림 없이 계속 유지됐다면, 지금도 그것의 가치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평온과 평안은 이제 그 자체로 루이자의 특권이 되어 있었다. 루이자는 하루하루가 묵주 알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부드럽고 흠 없고 순수하게 오랫동안 계속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감사함으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뉴잉글랜드  수녀>, p.96





아  너무나 짜릿한 소설이었다. 루이자는 루이자대로 실망하고 답답했지만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자 했던 조 역시 조 대로 자신의 사랑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걸 느끼는 자신의 마음도 갈등에 갈등을 거친 것이야. 조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나 나를  기다려준 이 여인, 이 여인을 저버린다면 너무 큰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하고는 내적 갈등 오지게 폭발하면서 지내고 있었단  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아아, 너무나 짜릿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14년의 기다림을 생각한다. 14년의 기다림. 어느 순간 그 기다림은 내가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진행됐을 것이다. 그렇게  14년이 흘러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드디어 그 사람이 나타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행복함, 벅참 대신,  루이자에게 '어?'  이런 감정 찾아왔고... 그녀에게는 14년 만에 나타난 약혼자보다 그녀 혼자만의 삶이 더 소중했음을 그녀는  느끼게 된다. 


나는 기다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대를 원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상대에게 닿는  이야기라면 그것이 1년 4개월이든 14년이든 54년이든 좋아한다. 나는 뚜벅뚜벅 한 방향을 향해 걸어가다가 결국은 목적지에 닿는  이야기를 진짜 너무너무 좋아한다. 결국은 삶이란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기다림은 선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어떤 기다림은 분명 선일 것이었고, 그 기다림은 궁극의 행복을 줄 거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그러나 루이자와 조  대깃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기다림이 반드시 선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모든 기다림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14년이  너무 길었던 걸까? 14년간 그들이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신의를 지키다가 뒤돌아서야 했을까? 그 시간이 문제인 걸까? 아니면  애초에 그 사랑은 그렇게까지 컸던 건 아닌 걸까? 운명의 상대가 아닌 걸까? 여러 가지 생각해보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들의 삶에는  15년 전에는 그런 만남이, 그리고 그런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리고 14년간의 보지 않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만약 루이자가  루이자가 아니고 조 대깃이 조 대깃이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루이자가 루이자가  아니었다면 조 대깃이 있는 호주로 자기도 훌쩍 날아가 함께 돈을 벌다 돌아올 수도 있고 함께 돈을 벌며 그곳에서 정착했을 수도  있다. 조 대깃이 조 대깃이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수시로 루이자에게 편지를 띄워 애당초 싹텄던 사랑에 더 불을 지폈을지도 모르고 조  대깃이 조 대깃이 아니었다면 돈을 모으는데 14년이 걸리는 대신 3년이 걸려서 돌아와 루이자 옆에 안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가정은 루이자가 루이자이며 조 대깃이 조 대깃이기에 부질없는 가정이 된다. 루이자는 루이자고 조 대깃은 조 대깃이다.  그들은 15년전 사랑을 했고 14년간 떨어져 있었으며 이제 재회했으나 지금의 마음과 상황은 예전과 같지 않다. 그들은 그들에게  상대가 아닌 다른 더 소중한 것 혹은 소중한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상처 받을까 봐 내가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역시 선이 아니라는 거다. 만약 루이자가 상대의  상처를 걱정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조 대깃 역시도 그러한 마음의 상태라 걱정했으니, 그들은 예정대로 결혼했을 것이고 그  결혼은 설레거나 행복함 대신 불만이 차곡차곡 쌓이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에도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별로 이걸 원하지 않지만 '상대가' 상처 받겠지?라는 결정은, 상대의 마음을 추측한 것일뿐더러 나에게도 행복한  일이 아니다. 상대의 상처를 걱정하다 내리는 결론에서는 최소한 내가 힘들고 어쩌면 상대 역시 힘들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이런 것이 아니다,라고 결정을 내린다면 일단 내가 행복해지고, 억지로 무언가를 견뎌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인해 상대에게도  처음은 상처가 될지언정 시간이 지나면 상대에게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저 사람 나랑 억지로 사네'라는 걸 깨닫는 순간  상대의 마음은 얼마나 지옥이 될 것이란 말인가.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소설 속에서 여자들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행복한 걸 선택한다. 특히나 <뉴잉글랜드 수녀>는 너무너무 좋다.  으앗 너무 좋아. 너무 좋아서 필사하다가 손가락 아파서 때려치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어떤 결과가 펼쳐지든 간에 루이자가 조 대깃을 그 오랜 시간 기다릴 수 있었던 건, 자신의 탄탄한 삶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정해놓은 자기만의 삶에 대한 룰과 자기 존중.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이 안타까움이나  지침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라 평온과 평안으로 채워졌다. 역시 누구를 기다리든 아니든 내 삶을 단단히 채워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루이자도 나처럼 일상의 천재쯤 되는 것 같다. 아 진짜 루이자 얘기 백번 읽으세요, 여러분.. 루이자 만세 만세  만만세여. 루이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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