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인생 속 솔직한 이야기
서른, 뭐라도 되었어야 할 것만 같은 나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 무엇도 되지 못했을 뿐더러, 종종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견뎌내지 못한 채 이미 단 맛을 잃어버린 과거의 성공들을 핥아대며 언제 올지 모르는 밝은 미래를 마치 내 것인양 떠들어대곤 했었다. 미디어 속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어른들의 성공담은 항상 나의 열등감을 부추긴다. 분명 나도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닌데 말이다.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도록, 보증금 500에 월세 37만원의 4.5평 원룸을 구했다. 그 가격대의 원룸이라면 응당 그러해야 하는 것인지 샤워를 마치고 나면 문틈 사이로 물이 새고 있었고, 산 지 10년도 넘은 닥터마틴 구두 속에서 돈벌레가 후다닥 뛰쳐나오기도 했다.
자취를 하기 전까지는 인천의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았다. 너무나도 안온하고 편리했던 탓에, 이러다가 제손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개천절 오후 4시에 나른하게 누워있던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서울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던 한 부동산에 들어가서 지금 당장의 저축과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인 500에 40을 말했고, 총 2개의 매물을 보고 나서 해가 잘 들어오지 않던 첫번째 집으로 결정했다.
계약서를 쓰고 네이버 부동산에 다시 검색해보니, 비슷한 가격대의 더 괜찮아보이는 매물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내가 선택한 방은 좁고 낡았다. 섣부른 결정에 후회가 밀려왔지만, 나는 15제곱미터, 약 4.5평이라는 방의 크기를 삶의 에센셜한 물건들만 남겨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기로 했다. 이 제약은 꽤나 효과적이어서, 대부분의 물건은 본가에 그대로 두고 정말 필요한 물건들만 가져오게 되었다. 다소 부족했던 것들은 다이소에서 만 팔천원어치 쇼핑을 하고 나니 채워졌다.
밝은 형광등을 켜고 바라 본 거울 속 내 모습은 구리기 짝이 없다. 하지만 형광등의 밝음 덕에 여드름이 어디에 어떤 크기로 났는지, 다크서클의 짙음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줄곧 내 초라함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무드등을 켠 채 화장실에 들어갔었던 듯하다. 하지만 지금의 원룸에는 밝은 형광등이라는 선택지 밖에 없다.
이젠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발을 딛고 거울 속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모습까지도 끌어안으며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계약 만료일까지 363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