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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에도 없는 사람 Oct 23. 2021

멈추지 않는 것이 유일한 목표

2부 나아지는 감각

#러너스하이는언제쯤

#느린건걱정안해멈추는게걱정


지난주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난 한 달 갑자기 들이닥친 한 남자 인간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고 난 뒤였다. 몸무게가 순식간에 3-4킬로가 빠져버렸다. 허리가 맞는 바지가 없었다. 기력이 다소 딸리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몸이 가벼워지니 왠지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난 10년 간 운동을 꾸준히 해온 편이지만, 그럼에도 달리기는 잼병이다. 내게 오래 달리기란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달리다 보면 점점 몸이 천근만근으로 변해 팔다리가 말을 듣지를 안고, 뛰기를 포기하고 결국엔 걷고 마는 루틴의 실패 경험으로 점철되어 있다. 뛰는 건 다리인데, 왜 쇄골과 어깨가 아프고 팔이 무거워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달리기에 음악이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인터넷에서 핸드폰과 열쇠를 넣을 수 있는 얇은 벨트 스타일의 허리색을 샀다. 8천 원 밖에 하지 않았다. 달리기에 필요한 준비물은 이거 하나였다. 나는 보통, 저녁을 먹고 1시간이나 1시간 반 후에 운동화, 가벼운 옷차림으로 강변에 나가 뛰었다. 기숙사 뒤편으로 5분 거리에 바로 강변이 있었고, 구간을 정해 뛰어갔다 걸어오기, 왕복 뛰기 등 그날의 컨디션에 맞춰 운동량을 조정했다.


첫날, 내가 세운 목표는 단 하나, ‘걷지 않고 뛰는 것’이었다. 걷는 것보다 속도가 느려도 개의치 않겠다. 속도 상관없이 정한 목표지점까지 무조건 뛰는 것이다. 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내 유일한 목표이다. 쉽지 않았다, 자꾸 걷고 싶은 욕망이 내 발목을 잡았지만, 차라리 목표 거리를 줄일지언정, 걷지 말자는 다짐은 지키려 했다.


달리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숨이 가쁘니 입으로 호흡하게 되고 그러니, 조금 뛰기 시작하자마자 입 속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입을 다물고 코로 호흡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코로 숨 쉬려고 노력하자, 망할 비염이 안 도와준다. 줄줄 흐르는 콧물을 소맷부리로 닦아가며 참 모양 빠지게 뛰는 수밖에 없었다. 멈추지 말자고 마음을 먹으니, 실제로 목표한 지점까지 달릴 수 있었다. 점점 거리를 늘려갔다.


내 몸이 정말 강해질 수 있을까. 1월과 2월 두 차례의 면역력 저하로 인한 피부 재난을 겪은 후로, 운동을 포기할 수가 없다. 강력한 면역 장벽을 쌓아서, 쉬이 무너지지 않는 체력을 만들어야겠다. 앞으로 논문도 마무리해야 하고, 일도 병행해야 한다.


내게 절실한, 철인 같은 체력. 요즘 같아선 그 어떤 오락보다 운동이 제일 재미있고 즐겁다. 논문에 불이 떨어져 2주 정도 운동을 많이 못했다. 하지만 처음 3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뛰어보았다. 21분이 걸렸다. 경기까지 한 달 남짓 남았는데, 그래도 연습 시 세 번 정도는 완주해봐야 실제 경기 때 패닉을 겪지 않을 거 같다.


이렇게 연습을 이어간 지 한 달 남짓, 이곳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었다. 설마 했던 마라톤 경기가 3개월 뒤로 연기되었다는 주최 측 통지를 받았다. 3개월 뒤라면, 내가 이 나라에 없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나는 아쉬움의 눈물을 머금고 참가 취소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미 제작된 기념 티셔츠와 가슴에 붙이는 선수증이 우편으로 몇 주 뒤 도착했다. 아무리 밤에 뛰는 야간 마라톤 대회이긴 하지만, 형광 노랑 티셔츠라니… 눈이 부셔 도저히 잠옷으로도 입지 못할 컬러였다.


이렇게 내 첫 인생 마라톤이 좌절되었다. 언젠가, 코로나에, 그래서 마라톤 대회가 다시 재개된다면 다시 참가할 수 있게, 조금은 느슨하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뛰어보려 한다. 찬란한 햇살 아래 지치지 않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넘치는 에너지를 우리 어른은 언제 잃어버린 것일까 싶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제발 뛰지 마라, 차분히 걸어 다녀라' 해도 주체 못 하고 날뛴다. 어찌 보면 인간은 뛰지 않게 되면서부터 늙기 시작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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