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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에도 없는 사람 Oct 24. 2021

스승을 찾아 먼 길을 떠난 어느 요가 협객의 이야기

2부 나아지는 감각

2018년 가을, 2학년이 되었고, 대학원 새 학기가 막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가까웠던 남자 사람 하나를 떼내고 심신이 황폐한 상태였다. 옳은 선택이었지만, 다시 혼자가 된 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 둘 곳이 없던 그때, 추첨에 응모했던 기숙사 요가 클래스에 마침 당첨이 되었다. 6주 동안 진행된 저녁 1시간 반의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요가를 하고 온 날이면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이었다. 요가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요가를 그때 처음 만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수업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낀 요가는 고통스럽기만 하고 재미라곤 느끼기 어려운 운동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만난 요가를 그렇게 불같이 사랑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때 만난 선생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배움에 선생님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요가에서 선생님이 중요한 이유는, 요가는 그 세계가 방대하고 종류도 많을뿐더러, 수련의 깊이가 저마다 달라서, 선생들도 자기가 배운, 경험한, 수련한 요가만큼만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 만난 선생님은 내가 그간 요가라고 오해했던 것과 다른 요가를 알려줬다. 다리 찢기나 허리 꺾기, 발바닥으로 이마 치기 등은 없었다. 


6주 수업이 끝나자, 나는 요가를 더 하고 싶어 아주 안달이 난 상태가 되었다. 그 선생님께 계속 배우고 싶었지만, 선생님 반에 바로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했다. 몸이 닳았고, 맘이 급해진 나는 타이베이의 요가교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떤 지도자들이 있는지, 수업 구성과 위치, 시설, 수강료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도장깨기를 하듯,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스승을 찾아 먼 길을 떠난 초보 요가 협객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요가교실은 크게 4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구립운동센터 요가 클래스, 헬스장에서 운영하는 요가 클래스, 체인 형식의 요가 전문 교실, 요가강사가 독자적으로 가정집이나 렌트한 스튜디오에서 여는 소규모 클래스. 나는 어쩌다 보니 이 네 종류를 다 경험해보았다. 나는 수업과 선생님만 좋다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가서 수업을 신청했다. 물론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의 교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환영이지만. 나는 그전날 몸을 아무리 잘 풀어놨어도, 다음날 아침이면 몸이 막대기처럼 뻣뻣해진다. 지금 다니는 요가교실은, 집에서 걸어 30분 거리인데, 막 일어나 굳어 있었더라도, 30분 정도 걸어 교실에 도착하면 몸이 꽤 워밍업이 되어 말랑말랑해진다. 딱 좋은 거리다. 


먼저, 구립운동센터 요가 클래스다. 선생님마다 수업을 이끄는 역량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였다. 구립운동센터의 수업료는 내가 말한 저 4종류 요가교실 중에서 제일 저렴하다. 다만, 인기가 있는 선생님의 경우, 한 타임에 50, 60명이 같이 수업을 하기도 해서, 자세 교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제로에 가깝다. 한마디로 아수라장 각개전투다. 부상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난 수업 중 장요근에 부상을 입었다. (그 당시에는 어찌나 요가에 경도되어 있었는지 심지어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 어쩐지 동작이 너무 잘 되더라니…… 운동 중 부상만큼 안타깝고 공포스러운 일이 없다. 부상 후,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랑하는 요가를 3개월 쉬었다. 


 이 도시에는 몇 개의 큰 헬스장 체인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의 2주일 무료 체험권을 얻어 총 6번 수업을 갔다. 그런데 일단, 교실이 지하에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햇빛이 들지 않았고 에어컨이 가열차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요가 교실 환경은 아니었다. 한 반에 인원이 (구립운동센터처럼) 50, 60명이 족히 넘었다. 바로 옆 교실에서 줌바 수업이라도 있는 날이면, 쿵작 대는 음악이 벽을 타고 넘어왔다. 전혀,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인도 남자 선생님의 수업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은, 회원 영업을 너무 심하게 해서, 전체적인 인상을 망친 경우였다. 첫날 체험을 하러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사기꾼 같이 생긴 멸치대가리가 나와서 회원권 설명을 하는데, 1년 혹은 2년 계약 형식이었고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거절했더니. 갑자기 또 다른 가격표를 갖고 나와 들이미는 거다. 자기가 나한테만 싸게 해주는 거라며. 어이가 없었다. 헬스장에서 일하면서 왜 자기 몸은 저리 멸치대가리인가. 정해진 가격이 없이, 사람마다 일대일로 다르게 주는 가격이라니, 난 도저히 그 멸치대가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방학 때 주로 국외에 한두 달 지내는 나로서는, 연계약이 손해였다. 수업의 질도, 환경도, 수강료도 다 별로. 땡. 


세 번째는 체인 형식의 요가 전문 교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갓 문을 연 요가교실이 하나 있었다. 길가에 있어서, 통유리로 수업하는 모습이 다 들여다보였다. 천장에서 드리워진 플라잉 요가 때 쓰는 색색깔의 천을 보며, 플라잉 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았다. 하지만 이 호화스러운 인테리어를 보고 있자니 이곳은 수강료는 과연 얼마 인가 싶었다. 그러던 참에 귀국하는 유학생 한 명이 이 요가교실의 수강권을 양도한다고 나타났다. 와우, 하늘이 요가 협객을 돕는구나. 이곳은 가고 싶은 수업을 골라, 수업 가기 세 시간 전에 메시지로 예약을 하는 방식이었다. 수업은 인원이 많으면 10명 남짓, 적으면 3, 4명일 때도 있었다. 선생님의 역량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젊은 강사분이건, 나이가 있는 분이건 모두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13번의 수강이 끝나고 내가 내린 평가는, 가격 대비, 이곳이 최선의 선택인가? 아니다였다.  


마지막, 강사 개인이 꾸리는 소규모 클래스다. 네 가지 유형의 요가 수업 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세 선생님의 클래스를 들어봤고 현재도 듣고 있다. 수강 인원도 적고, 공간도 편안하고, 선생님이 맘에 들어 수강을 결정한 경우이므로 수업 내용에도 이견이 없다.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과도 익숙해져 점점 낯선 느낌도 줄어들고 서로가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수업의 관건은, 강사 개인이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느냐다. 기본적으로 독립적으로 반을 꾸리는 강사는, 경력과 실력 면에서 자신이 있을 것이다. 어떤 외부의 요가교실 브랜드에 기댈 이유가 없고,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학생들도 확보된 상태일 것이다. 다만, 학생들이 한 선생님 아래서 배울 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이 지루함을 느끼거나 선생님의 밑천이 금방 드러나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소규모 클래스는 환경적인 부분도 한몫을 한다. 요가를 하러 갈 때 시가지에 빵빵 차 경적소리가 울리는 큰 빌딩 건물에 들어가는 것과, 조용한 주택가를 걸어 길가에 핀 부겐빌레아라도 감상하며 교실에 도착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아는가. 앞 반 수업이 끝나서 학생들이 우르르 나오고 또 우르르 들어가기보다, 고요하고 준비된 공간에 조금 일찍 도착해 마음껏 몸을 풀고 창문으로 들어온 빛을 누리는 기쁨을 아는지. 소규모 클래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 비용 부분을 따져보자. 어떤 네 번째 소규모 클래스가 체인 요가학원이나, 헬스장 요가보다 비싸지 않았다. 대만 요가 교실 수업료는 한국 요가 교실 비용에 비하면 저렴하지만, 현지 물가에 비하면 다른 운동 이용료에 비하면 굉장히 비싼 편이다. 지난 4년간, 내가 유일하게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한 것이 요가 수업료였다. 


여름방학 동안 발리에 가서 1달간 지낸 적이 있다. 그때도 요가를 쉬고 싶지 않았고, 게다가 발리 하면 요가 아니겠나! 1달 무제한 수강권을 끊었고 숙소도 요가 교실 옆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얻었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지 않는 날엔 수업에 꼭 갔고, 초반에는 아침과 저녁 하루에 수업을 두 번  가기도 했다. 그 요가 교실은 계단식 벼논 사이에 위치해 있었는데,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벼논 사이를 부는 바람에 계단 양 옆으로 꽂힌 펜 조르(penjor)의 색색깔 천이 흩날리고, 계단은 발리 특유의 그림들이 총천연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천국에 계단이 있다면 이것 같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요가 4년 차인 지금, 스승을 찾았는가 못 찾았는가? 결론은, 아직도 찾고 있다이다. 언젠가는 혼자서도 수련이 가능한 때가 오겠지만 계속 찾아갈 것이다. 시간의 누적 없이 되는 일이 없다. 요가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급했던 마음은 내려놓았다.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그곳에 가 있는 나를 만나고 싶다. 몸도 마음도 자유로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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