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휘 Sep 20. 2020

생선은 안 불쌍해?

채식=환경운동?

고기는 불쌍한데 생선은 안 불쌍해?


앞서 이제 “종교적 이유가 있니?”라는 질문은 거의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도 계속 받는 질문은 “그런데, 고기는 불쌍한데 생선은 안 불쌍해?”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채식에 대한 기사 등에 꼭 달리는 악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비건이 아니라 고기만 안 먹고 생선, 유제품, 달걀 등은 다 먹는 사람,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단계로 따지면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이다. 그러니까 고기는 안 먹고 생선은 먹는 내가 이중적이라는 의미이다. 뭐, 진짜 가끔 “채소도 생명이 있는데 그건 안 불쌍하냐?”는 말도 들어봤으니까. 저 “생선은 안 불쌍해?”라는 질문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채식주의자들에게 하는 비난이다.     


사실 이 말이 내가 ‘채식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아니 때로는 그런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냉큼 “전 편식해요. 그냥 맛없어서 안 먹어요”라고 말하며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최대한 빨리 선수쳐서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열 번에 아홉번 이상은 이 질문이 꼭 나왔으니까.     


90년대의 채식이 종교와 연관된 것이었다면, 2010년 후반대 이후의 채식은 환경 문제, 동물권 이슈와 결합되어 있다. 많은 유명인들이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 환경 문제 때문에 채식을 한다'고 선언하고 많은 기사에서는 채식이 얼마나 환경에 이로운지 설명한다.     


그러니까 채식을 안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니, 내가 고기 좀 먹는다고 환경에 그렇게 영향을 주는 나쁜 사람이냐? 내가 그렇게 생명을 경시한다는 거야 뭐야? 야, 채식주의자 너네는 고고한 척 하는데, 너네도 다 똑같잖아! 이중적이잖아!’라는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다. 그 이야기가 “생선은 안 불쌍해? 풀도 생명인데 왜 먹냐?”는 비아냥이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환경 문제 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등학생 때 국어 문제집에서 ‘소의 메탄 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는 지문을 읽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에는 심지어 관심이 없다. 어렸을 때는 개를 무서워했고, 지금도 개나 고양이를 만지지 못한다. 동물권 주장에는 공감을 못한다. 아주 평범한 일반 사람에 불과하다. 그냥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기를 안 먹고 살아온 내가 뭐 그렇게 환경적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 봤겠는가. 그냥 안 먹던 건데 그에 대해 계속 설명하기를 요구받았던지라 곰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이렇다. 

아니 좀, 어차피 사람은 다 이중적인 거 아닌가? 

뭐 누구나 완벽하게 살 수는 없잖아? 뭐 끝까지 따지자면 인간이 살아있는 것이 제일 문제지, 완벽하게 깨끗하고 ‘난 책임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환경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당신이란 사람 개인’이 그 문제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나는 잘못 없고 너는 이중적이라고!’라고만 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뭐 그 관심의 표현이 채식이든 플라스틱 줄이기든 뭐든.     


사실 나도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다. 그래도 뭐, 이왕 하는 채식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좀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내친 김에 비건도 한번 시도해볼까 싶기도 하고. 사람은 어차피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칭찬 들으면 기분 좋고 비난 들으면 기분 나쁘고 그런 거지 뭐.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제 “생선은 안 불쌍해?”는 소리는 그만 듣고 싶다. 나 진짜 별 생각 없는데. 식습관에 내 인생 철학까지 고민해야 하는 거, 이거는 채식뿐이지 않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