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종교, 신념?
아, 혹시 종교적 이유 때문에 그러니?
최근까지도 채식한다고 말했을 때 보통 가장 먼저 돌아오는 질문은 대개 “특별한 이유가 있니?”였다. 그리고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아, 혹시 종교적 이유 때문에 그러니?”라는 질문이 따라붙었다. 내 주변만 해도, 내가 25여년간 만난 주변 사람 중에서 채식을 하는 사람은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자란 분 딱 한 분뿐이었다. 그러니 그런 질문을 하는 배경은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아주 오랫동안 채식은 종교적 이유에서 실천되었다. 지금도 전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종교적 이유의 채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채식 전문 식당은 특정 종교적 배경에서 운영되는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사찰음식 전문점이나 러빙헛(채식 프랜차이즈 음식점. 종교적 배경은 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 등이 그렇다. 그러나, 나는 종교적 이유가 없다. 불교 신자도 아니다. 요컨대 입맛 까다로운 편식장이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종교적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을 듣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아, 혹시 알러지가 있니?”라는 질문이나 “그럼 그 저기, 채식 단계 있잖아? 그거 뭐야?”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만큼 채식이 건강을 위한 행동, 자기의 선택의 하나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변화가 채식을 하는 데 좀 더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채식이 종교와 결합되어 있을 때, 즉 종교의 수행 방법의 하나일 때, 채식은 실천하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이 된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종교적 신념까지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교 신자로서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한다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절제, 생명 사랑의 마음을 지켜 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보통 사람에게는 이만저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채식인을 위한 잡지인 <Begun>의 기사를 종종 읽곤 했는데, 거기의 어떤 기사 타이틀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다. ‘사찰음식은 수행이다 비건은 수행이다’라는 제목이었다. 그 내용은 스님께서 사찰음식과 수행 정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내용이었기에, 그런 제목을 뽑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제목만을 보고는 바로 ‘헉! 나는 수행하는 느낌으로 채식 안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비건도 아니고 굉장히 느슨한 채식을 하는 주제에 말이다.
채식이 수행이 된다면 나만 해도 너무 부담스럽다. 더 나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고 더 도덕적으로 훌륭해야 할 것 같고 사회문제에도 열심히 목소리를 내어야 할 것 같고 몰아치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할 것만 같다. ‘아니 고작 밥 먹는 거 하나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버린다.
보통 사람들이 채식 실천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이런 편견 때문이지 않을까. 아주 오랫동안 채식은 종교적 수행 방법의 하나로 실천되었고, 그러다보니 종교나 어떤 신념과 채식이 결합되어 있다는 무의식적인 느낌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 “종교적 이유 때문에 고기 안 먹는 거야?”라는 질문을 받지 않은 지도 몇 년이 되어간다. 2020년대에는 채식은 그저 식습관의 하나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심지어 다이어트를 위해 선택할 수도 있는 선택지이다. 아, 채식이 이렇게 부담 없는 하나의 선택지로 변화하고 있어서 참 좋다.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아도 실천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로 변해 가서 참 좋다. 그러니까 혹시, 채식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별 생각 없이 그냥 한 번 시도해봐도 좋겠다. 어떤 종교도 신념도 수양도 굳이 전제로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하나의 식습관일 뿐이라고 세상은 점점 많이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