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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Oct 04. 2020

남편 밥은? 애들 밥은?

채식인이 결혼하면 밥은 어떻게 차리나?

“너 그럼 나중에 남편한테 고기반찬 안 해 줄 거야?”


놀랍게도, 내가 10대였을 때도 내가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이렇게 물었었다. 초등학생 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생 때에도 들었던 말이다. 10대에게는 결혼이 아주 먼 미래임에도, 채식을 하면 가정에서 식사를 어떻게 차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도 다들 진지하게 물어보곤 했었다. 심지어 미래의 나의 남편과 자녀가 고기반찬을 먹지 못할 것을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렸을 때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죠 뭐.”라고만 대답했었다. 그 때의 나는 10년 뒤가 될지, 20년 뒤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에 어떻게 식사를 차려야 하는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아니, 대체 왜 미래의 일을 가지고 내 식성에 대해 지금부터 고민을 해야 하는 거지?     


최근에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에 채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덕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결혼하면 아내가 음식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뀐 덕분일 것이다. 지금은 예전에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히려 놀란다. 몇 년 새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신혼부부에게 “남편한테 아침 차려 주니?” “와이프한테서 아침밥은 얻어먹니?”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하곤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언니가 몇 년 전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남편 밥은 어떻게 차려줄 거야?”는 질문을 받으면 언니의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다. 아니, 심지어 언니와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도 고기를 먹지 않는 나의 언니가 어떻게 밥을 차리고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언니는 고기 굽는 냄새를 맡기 힘들어 고깃집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채식인인데,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결혼을 했다. 형부에게서 들은 현실은 이렇다. 서울 안에 집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근시간이 길다. 따라서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므로 아침은 먹지 못한다. 점심은 당연히 회사에서 먹는다. 형부의 회사는 야근이 잦아서 저녁도 먹고 오는 날이 많았다. 회사에서 야식으로 치킨을 시키곤 해서 자주 치킨을 먹었다고....... 언니는 근무시간이 오후~저녁인 일을 했기에 평일은 함께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주말만 함께 밥을 먹는데, 평일에 점심 저녁으로 고기가 든 음식을 먹었던지라 주말에 고기가 없어도 섭섭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식성도 고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게 좀 바뀌었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것은 슬픈 현실이지만, 대부분의 삶이 이렇지 않을까? 그리고 더 이상 아내가 밥을 차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절이 왔다. 이제는 채식하는 여성에게 “그럼 결혼하면 밥은 어떻게 차릴 거야?”라고 함부로 묻지 않는다. 더구나 다행히도, 배달음식, 밀키트, 온라인 반찬배송 등 더 이상 내가 요리를 잘 할 필요도 없는 시대이다. 채식하기 한결 나아진 시절을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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