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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Oct 04. 2020

너 진짜 먹을 게 없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채식을 하면 먹을 것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백반집에 가도 제육볶음 정식이 흔하고, 햄버거도 못 먹고, 중국집에 가도 탕수육을 못 먹으며, 회식은 삼겹살이나 치맥이기 마련인데 못 먹고, 하물며 뷔페에도 고기요리가 메인인 법이니까.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너 아직도 고기 안 먹어?”라는 질문을 받는다.     

사실 고기를 먹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되었고, 입맛이 잡힐 어린이 시기부터 먹지 않아서 이미 고기는 나에게 먹는 음식으로 별로 여겨지지 않는다. 선택지가 애초에 아닌 것이다. 그래서 먹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도 고기 안 먹어?”라는 질문은 당황스럽다. 수십 년간 먹지 않은 음식을 새롭게 먹는 것은 꽤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육류만 먹지 않고 생선부터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기 맛이 나지 않으면 아주 엄격하게 성분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같이 피자를 먹을 때 위에 얹은 베이컨만 들어내고 먹기도 하고, 라면도 사골국물 류가 아니면 먹는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입이 예민해져서 어떤 음식에 고기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고기 맛이 많이 나는지 안 나는지 잘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나는 짜파게티는 먹지만, 짜왕은 먹지 못한다. 나에게는 고기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먹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 먹을 수 없는 것을 알고 나면, 먹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즐겁게 먹으면 된다. 나는 외식도 무척 좋아한다. 맛집 탐방도 좋아하기에, 회사의 점심시간도 외식의 시간으로 생각하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기 괜찮은 식당을 정리한 리스트를 만든 적도 있는데 약 70여곳이 넘었다. 이렇게 맛집을 좋아하니 친구들과 만날 때도 내가 식당을 정하는 편이다. 친구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배려하는 식당을 찾는 것이 힘드니 내가 장소를 정하라고 한다. 나는 그럼 몇 가지 맛집을 추천해서 그들이 고르게 한다. 이렇게 하면 친구들도 나를 배려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적고, 나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을 수 있다.  

    

사실 어려울 때는 해외여행을 갈 때이다. 해외여행은 관광 스팟에 있는 식당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지역의 명물 음식이 고기인 경우도 많아서, 나 때문에 여러 명이서 먹어야 하는 고기 요리를 시키지 못하거나 식당을 정하기 힘들어서 함께 가는 친구를 불편하게 한 적도 있다. 이것은 참 미안한 노릇이지만 다행히도 그때마다 친구들이 많이 이해해주었다. 비건이었다면 아마 해외여행에서 관광지가 아닌 식당을 중심으로 루트를 짜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행지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한 기억보다는 맛있는 것을 먹고 행복해한 기억이 더 많다. 평소에 외식을 할 때도 그렇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맛집이 너무나 많다.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이 가득하다.      


사실, 페스코 이상의 단계 즉 육류와 생선을 먹지 않는 단계의 모든 채식인들은 외식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집은 고기를 먹지 않는 점은 같지만, 그 안에서도 식성이 다양하다. 첫째 언니는 비린내 때문에 해물이나 생선도 먹지 못한다. 둘째 언니는 해물은 먹지만 회를 먹지 못한다. 나는 회도 먹고 해물도 먹는다. 이러니 외식은 보리밥집이나 고기 메뉴가 적게 나오는 한정식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바닷가로 여행을 갈 때다. 바닷가에는 횟집뿐이다. 특산물은 먹고 싶고 해물을 못 먹는 사람도 있고, 이것 참 어려운 문제다.     


첫째언니와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나는 오분자기 뚝배기, 보말칼국수, 전복밥, 갈치조림 등을 먹고 싶은데 언니는 전혀 먹을 수 없으니 배려하기 위해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서 갔다. 그러니 당연히 관광지에 있는 식당은 못 가고 첫날 점심은 시내의 인도음식점을 갔고, 저녁은 숙소 인근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그리고 나는 그 저녁을 먹으면서 완전히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나를 배려한답시고 “너 가고 싶은 곳 가~”라고 말하면서 코스를 자기가 먼저 제의하지 않는 언니의 태도에 지쳤고, 언니의 식성을 배려하기 위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하나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났던 것이다. 결국 다음날부터는 각자 따로 식당을 알아서 갔고, 관광지 주변 식당에선 고를 수 있는 메뉴 자체가 없는 상황의 언니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곤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으면서도,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은 참 지치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면, 내 먹을 것은 내가 알아서 잘 챙겨야 한다. 적극적으로 식당을 찾고 제안하고 동선에 녹여내야 한다. 맞다, 채식을 하면 먹을 게 참 없다. 그러나 먹을 게 없어서 어려운 것보다, 다른 사람들도 나도 불편하지 않은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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