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를 넘어 평범함이 되었으면
나는 거의 항상 ‘와, 고기 안 먹는 사람 주변에서 처음 봐!’라는 말을 들었다. 늘 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일한 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특이한 사람이었고, 여러 가지 편견과 주목을 받았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이 되어서까지 나는 늘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식성을 설명하고 비슷비슷한 질문들에 답해왔다.
앞서 이야기했던 여러 가지 편견들, 채식주의라는 편견, 종교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 생명 사랑의 철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편견(내가 채식주의자가 아니라서 이런 생각을 편견이라고 느꼈다. 채식주의자 분들은 편견으로 받아들이시지 않을 수 있다.), 파릇파릇한 샐러드를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 사회생활을 못 할 것이라는 편견,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 배우자와 입맛이 안 맞으면 문제가 생길 거라는 편견, 건강상의 문제 또는 장점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 이런 편견에 대해 하나 하나 답변해 주면서 나는 끊임없이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일련의 글을 쓰면서 내가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자아가 형성될 나이부터 남들과 다르다는 시선을 받아 온 점이 나의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늘 나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특히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존재임을 설명하고 애써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평범하지 않다고 느꼈고, 평범해지고 싶었다. 입맛은 못 바꾸겠으니까, 이 입맛이 특이한 입맛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다. 내 입맛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들과 섞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채식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나 보다.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불편한 시선을 감당하면서 신념을 위해 채식을 실천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럴 용기는 없다. 나는 여전히 평범해지고 싶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평범하다고 인정받고 싶다.
최근 몇 년간에 채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하루 한 끼 채식을 실천하거나 간헐적으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내게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는데 채식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전보다 가벼워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전처럼 여러 가지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리고 카페에 우유 대신 두유를 선택할 수 있거나, 고기 외에도 메뉴가 있는 식당이 많아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다양한 입맛에 대한 배려가 더 쉬워진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 가는 중이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나는 이십 몇 년 동안 겪어온 편견이, 실은 ‘배려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려를 해야 할 필요도 없고 배려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사회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약간 다른 사람’이 등장했을 때는 당황하게 되고, 자신의 기존 생각 속에서 이해하기 위해 그런 편견 어린 말을 했구나 싶다. 그러다가 이런 ‘약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여유가 생기고, 배려하게 되고, 그리고 사회는 바뀌어가고, 그러다가 점점 편견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채식이 별 것 아닌 평범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자연스럽고 평범해서 굳이 ‘배려’라는 것이 필요 없는 그런 것. 귀찮게 배려할 필요도 없고, 배려를 받으며 미안스럽게 느낄 필요도 없이, 이런 저런 다른 생각과 다른 입맛이 자연스럽게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는 사회. 그렇다면 모두가 조금은 편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