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을 이해받을 때의 행복감
요즘은 채식 인구가 늘어났지만,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채식하는 사람을 만나기 정말 드물었다. 약 20년 동안, 그러니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주변에서 채식하는 사람은 평생 딱 한 분 봤는데, 독실한 불교 신자이셨다. 그 분과 함께 구내식당 김밥을 사다가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김밥 안의 햄을 함께 하나씩 빼가면서 먹을 때 느꼈던 동질감을 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이 김밥 안의 햄을 빼고 있다니!
“김밥 안에 햄 빼면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죠?”
“네! 맞아요!”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햄을 하나씩 빼면서 작은 행복을 느꼈다. 그분의 집안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 모두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분이 나보다 최소한 십 년 이상은 나이가 많으셨으니 나보다 더 오래 더 많은 편견을 만나지 않으셨을까.
김밥 안의 햄을 빼도 앞에 있는 사람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이해해 준다는 것, 거기에서 오는 행복감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마치, 오이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오이를 빼고 먹을 때 주변 사람들이 ‘채소를 먹어야지!’라며 오이 먹기를 강요할 때 받는 느낌을 상상해보라. 그러다가 같이 오이를 먹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오이를 빼낼 때 느끼는 안도감과 이해받고 있음,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오이를 안 먹는 사람들도 이런 감정을 느끼겠지?
나는 오이를 좋아하지만, 오이를 안 먹는 사람에게 “왜 오이를 빼고 먹어? 오이를 먹어야지! ”라고 강요하거나 “오이를 안 먹다니, 넌 참 특이하구나”라고 말하지는 않는데, 내가 햄을 빼면 바로 “고기 안 먹어? 왜? 언제부터? 영양 때문에 먹어야하지 않아? 그럼 풀만 먹어?……”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나는 특이한 사람, 편식왕으로 낙인찍힌다. 그런 식의 레퍼토리를 30년 정도 겪었다.
2010년대 후반 이후에는 좀 달라졌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고기를 안 드시는 분을 여럿 봤고, 햄이 안 든 김밥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뭐랄까, 사회적으로 개인의 커스터마이징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예전에 단체로 비빔밥을 시켜 먹을 때, 나는 “제 것에는 다진 고기(흔히 ‘민찌’라고 하는) 올리지 말아주세요!”라는 말을 못했다. 다같은 음식을 시킨 건데 차마 내 것에만 다른 주문을 한다는 게 무척 힘들고 눈치보였다. 지금은 시도해 보고 있다. 그런 ‘조금 별스러운’ 주문을 하는 게 덜 눈치보이는 분위기로 사회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내가 좀 더 내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어른이 된 덕분일까?
다른 사람과 김밥을 먹을 때, 그 사람이 오이를 빼든 햄을 빼든 그냥 ‘아, 그 음식을 싫어하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뺄거면 애초에 햄 든 김밥을 시키지 말았어야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단체로 시킨 김밥을 먹을 때나, 이미 만들어진 김밥을 사서 먹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김밥의 햄을 빼는 것 정도는 이해해 주면 안 될까? 나도 누가 김밥의 오이를 뺀다면 가만히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