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급식에서 채식을 할 수 있다고?
2006년에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2002년에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거기 나오는 ‘떼제 공동체’에 꼭 가 보고 싶어서 일정을 잡아 갔었다. 떼제 공동체는 프랑스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인데,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들렀다.
그곳에서 식사 시간에 급식을 받으러 갔는데, 세상에, 커다랗게 ‘NO MEAT’라고 적힌 표시판이 있는 거였다. 급식 메뉴가 한 가지가 아니라, No Meat 메뉴가 따로 있고, 그 메뉴를 먹는 줄을 따로 서서 배식을 받는 형태였다. 그 때의 충격이라니!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게 뭐 별거라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해외여행 경험도 거의 없었고, 평생 단체 식사에서 고기를 안 먹는 사람들을 위한 메뉴를 따로 만들어서 제공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정말 놀랐던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단체 급식을 할 때 ‘채식인 전용’이나 ‘고기 없는 메뉴’ 줄을 따로 만드는 걸 본 적이 없다. 최근 몇몇 학교 학생식당에 채식 메뉴를 따로 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 소수의 학교에서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채식 인구가 적어서 아마 번거롭고 수지가 맞지 않아서일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까지도 그 떼제에서의 ‘No Meat’라는 단어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정말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때까지 단체 식사에서 나를 위한 메뉴가 있다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늘 학교에서든, 공공도서관에서든, 회사에서 단체급식을 먹을 때든, ‘오늘 메뉴는 뭘까, 내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이 하나는 있겠지? 김치는 있을 거야’, 그렇게 늘 생각하면서 급식 메뉴를 확인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내가 당당하게 나를 위한 별도의 식사 줄에 설 수 있다니.
이와 비슷한 경험은 기내식 사전 주문을 알게 되었을 때이다. 예전에는 기내식을 미리 주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다. 그래서 일반 기내식에 고기 메뉴밖에 없는 경우에는 빵만 먹기도 했다. 그러다 기내식 사전 주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해물이나 채식 기내식을 시켜 봤는데, 다른 사람보다 밥을 일찍 받을 수 있고,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누구에게나 기쁜 경험일 것이다. 최근에는 채식청소년의 급식 선택권 보장을 위해 채식급식 도입이 제안되고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채식 급식 선택 학교를 시범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채식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정말 높아졌구나 싶다. 청소년 시기부터 당당하게 나를 위한 줄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단체 식사 때 항상 나를 위한 메뉴가 있는 배려를 받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자기와 식성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같은 급식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렇게 자란 청소년들은 틀림없이 나와는 다르게 더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고 채식 저변을 넓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단체 급식에 줄이 두 개인 곳이 점점 늘어나겠지? 상상만 해도 두근거린다. 3찬 급식이면, 고기 반찬을 빼고 1찬이나 2찬을 먹는 게 익숙했지만, 채식인을 위한 급식 줄이 따로 생긴다면 나도 남들처럼 3찬에 국도 다 받아서 먹어야지. 나를 위한 줄에 서야지. 행복한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