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 안 하는 사람 있어?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면 채식주의의 대변인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채식주의가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고 건강이 어쩌구 등등...... 그래서 나는 실제로 ‘채식주의자’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채식주의자’에게 달라붙은 이런 여러 편견들을 마주하기 싫어서 나를 소개할 때 “저 채식주의가 아니고요, 편식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나를 ‘편식쟁이’라고 놀린다. 나이를 그렇게 먹었는데 편식을 한다는 은근한 비아냥을 담아서.
조경규 작가님의 ≪오무라이스 잼잼≫에, <적당히 골고루 잘 먹으면서 요령껏 편식하자>(시즌3후기) 라는 편이 있다. 편식에 대한 생각을 깨뜨려 주어서 무척 인상깊게 기억하는 편이다. 흔히 편식한다고 하면, 채소를 안 먹는 것을 생각하지만 예를 들어 느끼한 것이나 단 것을 못 먹는다면? 그것도 편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못 먹는 게 없지만 중국에서는 향신료 때문에 하나도 못 먹는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도 중국에서는 엄청난 편식쟁이가 된다. 외국에 나가서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못 먹은 적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골고루 먹는다고 한들 전 인류의 식재료 중 극히 일부만 먹고 있고 너나 나나 모두 편식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편식쟁이라고 골고루 안 먹는다는 잔소리를 듣지만, 나는 양식도 잘 먹고, 동남아 음식도 잘 먹고, 두리안도 먹고, 고수도 먹는다. 그런데 뭐든지 잘 먹는다고 자부하시는 분들 중에 한식이 아니면 입에도 못 대시는 분들도 있다. 그럼, 어느 쪽이 편식하는 거지?
내 주변에는 토끼 고기, 멧돼지 고기, 양고기 등 정말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드시는 분도 있다. 그렇지만 그 분도 자기 입에 맛이 없으면 안 드신다. 인스턴트 식품도 맛이 없다고 거의 안 드신다. 그럼, 그분도 엄청 편식쟁이인데 왜 나한테만 편식쟁이라고 그러지?
아이들에게 ‘골고루 잘 먹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들 그 자신도 가리는 음식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떤 채소를 못 먹는다거나, 어떤 조리 방법으로 조리한 음식을 못 먹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은 못 먹는 음식을 나이가 들면 좋아할 수도 있고, 지금은 좋아하는 음식을 나이가 들면 싫어할 수도 있다. 나도 어릴 때는 도라지를 잘 못 먹었지만 지금은 잘 먹고, 단 것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썩 즐기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계란과 우유가 몸에 잘 맞지 않아서 줄이는 중이다. 보통 육고기만 먹지 않으면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이고, 그 다음 단계는 생선과 해물까지 먹지 않고 계란과 유유는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인데, 나는 생선과 해물까지는 괜찮은데 계란과 우유가 몸에 썩 맞지는 않는 듯해 줄이려는 중이다. 어릴 때는 계란과 우유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것도 바뀐 셈이다.
다양한 이유로 식성을 선택할 수 있다. 신념 때문에, 맛이 없어서, 또는 건강 때문에, 체질 때문에, 아니면 주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등등. 우리 모두 편식하고 지구상의 수많은 요리 중에서 우리가 먹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한계 내에서 우리 모두의 식사는 즐거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