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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Feb 15. 2021

09. 처음 맛본 패배감

잔잔의 아홉 번째 단어: childhood


며칠 전 아빠랑 TV를 보다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초연 무대를 보았다. 매년 이맘때 즈음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는 그의 생일을 기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피아니스트가 약 250년 만에 발견된 곡의 초연을 한다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무대를 보고 있자니 어렸을 때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에 빈자리가 없던 그 시절에는 아이들 중 열에 여덟이 가졌던 꿈이었지만. 음 그리고 모차르트! 나도 모차르트로 콩쿠르 나갔었는데… 괜한 접점을 찾던 중에 어떤 하루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처음 피아노 학원에 간 건 나와 일곱 살 터울의 언니가 본인의 학원에 데리고 간 날이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내게 언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른(어른 아님)이었고, 그런 언니가 하는 건 전부 따라 하고 싶었다. 내가 오빠랑 치고받고 싸우면 언니는 항상 오빠를 혼내주곤 했다. 이 씨(氏) 집안 세계관 최강자인 오빠를 혼내주는 언니가 너무너무 좋았다. 아무튼 언니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간 학원은 방이 엄청 많았고, 방마다 제각기 소리를 쉴 새 없이 뿜어댔다. 어지러운 소리 속에 언니의 피아노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고, 집에 가자마자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에 다니겠다고 졸랐다. 



다섯 살? 여섯 살?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무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오빠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날 혼자 보내는 것보단 묶어서 보내는 것이 맞벌이 부부에겐 마음이 편했을 것이기에 오빠와 세트로 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 손가락을 따라가다 보면 새파랗던 하늘이 노릇노릇 익어갔고, 배가 슬슬 고파져 오면 포도알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모든 어린이들의 거짓말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듯하다. 어차피 티 나는 거짓말이었을 텐데 어설픈 영악함이 왠지 좀 싫다. 학원에 다니고 몇 달이 지난 후 학원 연주회가 열렸다. 엄마와 아빠는 퇴근 후 날 보러 와줬다. 연주는 1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고사리 손으로 뚱땅거리면 사람들이 다들 포근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역시 귀여운 게 최고다. 사람들의 박수는 둘째치고 엄마 아빠의 칭찬만으로도 이후 꽤나 오랜 시간 피아노를 칠 이유는 충분했다. 시간이 흘러 오빠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친구와 특공무술 학원을 다녔고, 난 더 이상 오빠랑 함께 학원에 갈 필요 없이 옆집 사는 소꿉친구와 같이 등원하게 됐다. 친구랑 나는 매일 붙어 다녀서 종종 비교당하곤 했는데, 내가 달리기는 더 빨랐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피아노를 훨씬 잘 쳤다. 그 친구도 꿈이 피아니스트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지역에서 열리는 큰 피아노 대회가 있었다. 각 학교에서 학년과 상관없이 한 명이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대회였다. 우선 반별로 한 명씩 뽑혀 음악 선생님 앞에서 연주를 했는데 거기엔 5학년 6학년 언니들과 나, 그리고 내 친구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꿈이 변호사, 판사, 경찰, 군인 이 네 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중이어서 피아노에 대한 꿈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그때 최근에 나갔던 콩쿠르 곡인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0번 1악장을 연주했다. 항상 날카로운 리코더 소리로 잔뜩 채워져 있던 음악실은 정말 조용했고 어느 때보다 부담 없이 즐겁게 연주했다. 그리고 내가 학교 대표로 뽑히게 되었다. 왠지 친구에게 미안했다. 아직 피아노를 사랑하는 친구였고 그 간절함을 내가 재수 없이 운 좋게 빼앗은 것만 같아서. 다행인 건 친구는 다음에 나간 콩쿠르에서 전체 대상을 타며 자신의 능력을 여실 없이 뽐냈다.


대회는 다가오는데 대회장에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나도 모르고 엄마도 몰랐다. 엄마의 3,40대는 너무 바빴고 나는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그래서 대충 옷장에 있던 유일한 치마를 입고 갔다. 반차를 내고 나를 대회장에 데려다준 엄마는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내 머릿속엔 아이스크림뿐이었고 기분 좋게 홀에 들어가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 위화감을 느꼈다. 


요즘 것에 빗대어 말하자면 다 엘사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눈에는 드레스 색과 같은 색의 섀도를 바른 아이들과 반짝이는 드레스… 디즈니랜드인 줄 알았다. 지역 각지에서 한껏 차려입은 아이들 인원이 많아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엔 객석에 앉아서 다른 친구들의 연주를 구경해야 했다. 내 옆에는 6학년 언니가 앉았는데 내게 땅콩 캐러멜이랑 청포도 알사탕을 줬다. 아빠 닮아 이가 잘 썩을 것이라고 엄마는 자주 먹지 못하게 하던 사탕을 줬던 언니가 처음부터 좋았다. 초등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친화력으로 금세 가까워진 그 언니는 먼저 대기실로 갔고 나는 사탕을 입안에서 열심히 굴리며 연주에 집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나는 말 그대로 동네 학원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때 또래 애들의 열에 아홉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무대 위에 엘사 옷을 입은 친구들은 정체불명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클래식 명곡 20 테이프에서나 듣던 그런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 대회에 가기 전까지 실력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배운걸 열심히 쳤을 뿐. 매일 학원에 가서 연습하고, 끝나곤 바로 건너편 분식집에서 친구와 떡꼬치를 사 먹는 게 즐거웠다. 그동안 한 번도 피아노에 관련된 모든 것이 즐겁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부터 피아노를 다시는 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느낀 최초의 패배감. 정중지와,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https://youtu.be/rhjKCkh-eJg

Mozart. Sonata para piano nº 10 Kv 330. I. Allegro moderato.


내 꿈이 더 이상 피아니스트가 아니어서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내가 준비한 그 곡을 몇 달이고 연습하면서 지루했던 기억은 거의 없었는데 무대 뒤에 앉아있을 때 나는 당장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공간에서 삼킨 공기는 텁텁하고 무거웠다.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지 ‘ 하고 연주를 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사고의 패턴이 지금이나 예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바보…’에서 ‘그래도 뭐 어쩌겠어, 해야지 …’ 이때부터 굳어진 게 아닌가 싶다. 


연주가 끝나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연주를 무사히 끝낸 안도감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도, 불과 몇 분 전에 느꼈던 패배감도 없었다. ‘얼른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야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생각만 했다. 반차를 내고 작은 꽃다발과 함께 날 기다려준 엄마는 나를 하겐다즈 매장에 데려가 줬다. 손에 쥔 상장이 한껏 팔랑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스트로베리 아이스크림 빙수 앞에서 잠시 놀랐다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엄마가 조급한 수저질을 숨기는 걸 눈치채곤 아이스크림도 그저 그런 맛이 됐다. 


그날은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나 생생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들이 손에 꼽을 수가 없었다. 즐거움에서 시작해서 낯섦과 위화감, 패배감, 그리고 왠지 모를 초연함 … 처음 느낀 감정들을 작은 몸으로 견뎌낸 하루였다. 그때보다 두배가 넘는 시간을 살면서 자신감이 꺾이는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지금은 닥치기 전에 미리 패배를 예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지. 질 수도 있지만 덤덤하게 해내야지. 내 생에 첫 패배의 시작. 너무 겁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겼던 나날들이 그날 이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by. 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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