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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ent Sohyeon Aug 21. 2024

나와 내 딸의 모래시계가 이 작품같다면 좋겠습니다

테리보더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展, <모래시계 가족>

 3월, 수원의 한 백화점 안의 작은 갤러리 속의 저는 무척 바빴습니다. 사비나미술관 기획으로 전국을 돌아가며 열리는 전시《테리보더 :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의 에듀케이터이자 도슨트로 전시에 참여했었거든요. 그 때는 신학기였고, 학교 적응 기간인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은 이른 수업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백화점 문화센터에, 또 이 갤러리에 오곤 했습니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손을 뻗기 마련인 마시멜로, 하리보 젤리, 오레오 과자 등으로 인형 오브제를 만들어 볼 수도 있는 체험전이 진행 중인 갤러리. 어느 아이인들 그 문을 쉽사리 그냥 나설 수 있었겠어요. 어머니들은 아이 손에 이끌려 체험비를 카드로 긁어야 했고, 아이가 못하겠다면 팔을 걷어 올리고 글루건을 잡으며 아이가 원하는대로 작업까지 해주셨지요. 폭풍같은 에듀케이팅 타임이 지나가고 백화점 식당가에 점심 시간이 찾아오면 갤러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습니다. 그럴 때면 체험 테이블을 정리하거나 저만의 쉬는 시간을 가지곤 했죠.


백화점 안의 갤러리는 도슨트로서 참 생경한 경험이었습니다. '관람객'이지만 '고객님'이라 불러야 하는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시간에 따라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점심 시간이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타임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신기했어요. 그간 활동했던 시립미술관이나, 사립 미술관에서는 절대 느껴보지 못했던 '유통업체 안의 서비스 시설로써의 갤러리'라는 곳.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타임제에 익숙해질 무렵, 고객님들의 점심시간인 나의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한 노년을 바라보는 여성 관람객(인 동시에 고객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작은 손가방을 들고 홀로.


아 조금 전에 빼먹은 이야기가 있어요. 백화점 안 갤러리는 또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도슨트 투어 타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원하면 언제든 도슨트를 해드려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고객님의 니즈에 부합해야 하는 시설의 특이성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절대 불만이라거나 빈정거리는 것 아니에요. 계약서를 쓸 때 이미 전해 들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업무의 메뉴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여성관람객이 도슨트를 원하시진 않을까. 조용히 그 분께 다가가 인사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이 전시에서는 무료로 전시 해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아니요, 조용히 둘러 볼께요."

"네, 천천히 관람하세요."


쉬는 시간을 뺏기지 않은 듯 해서 은근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 텅빈 갤러리 안. 저와 그 분만 있는 상황 속어색한 침묵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테리보더의 작업은 위트와 웃음이 넘치는 작업이 다수라 일행이 있다면 누구나 깔깔 웃으며 저것봐, 저것봐 하며 즐겁게 관람하시는데 혼자 오신 그 분은 미소를 짓기도 멋쩍으신 건지 가장 웃픈 작품 <너무 늦은 만남> 앞에서도 무표정 하시더라고요.


<너무 늦은 만남>  달걀이 엄마에게 드릴 편지를 들고 찾아갔더니 엄마는 이미 프라이드 치킨이 되어 있었다!


슬쩍 그 분께 다가갔습니다.

"이 작품이 관람객 분들의 반응이 딱 둘로 나뉘어지는 작품이에요. 어떤 분은 인상을 팍 찡그리시고 왜 이런 걸 만들었냐고 화내는 분도 계시고요, 반면 어떤 분들은 너무 웃기다며 큰 소리로 웃으시기도 해요. 고객님은 어떠세요?"

"전...... 글쎄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던데 이거 설명해 줄 수 있어요?"


테리보더의 작품 중 몇몇은 언어유희를 이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식 영어 은유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작품도 있었죠. 예를 들어 친구의 코딱지가 보이면 영어로 "You have a bat in the cave", 즉 "네 동굴 안에 박쥐가 있어"이런 식으로 말해주는 농담을 작품에 응용한 <동굴 속 박쥐>와 같은 작품은 영미권에 살아보지 않은 관람객이라면 도슨트의 설명이 필요한 경우였죠.


위 <동굴 속 박쥐>, 영미권의 언어유희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물론 그 아래 <폰 스타쉬>도.

그 여성분은 관련된 작품들을 질문하셨고 답을 말씀드리면 말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할 뿐 무표정했습니다. 이쯤이면 웃으실 법도 한데...... 저는 개그콘서트에 입성한 신입 개그맨 마냥 관람객의 표정을 살피며 '어떻게 해야 웃게 해드리지? 이렇게 해 보면 웃길까?'를 고민하다 결국 전시장 한 바퀴를 그 분과 모두 돌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앞에 당도했습니다. 그 작품의 제목은 <모래시계 가족>이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분께 제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왼쪽이 <모래시계 가족> 아빠 모래시계가 아이 모래시계르르 안고 있는 한때의 행복한 풍경이다


"제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제가 마음 한쪽 끝이 아리는 작품이기도 해요. 부모 모래시계가 아이 모래시계를 번쩍 안고 있는 행복한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부모의 시간은 상당히 흘렀고, 아이의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았죠.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서 정말 품 안에 끼고 사는 시간, 어찌보면 전체의 인생에서 참 짧은 시간인데 저는 오늘 아침에도 저희 집 아이를 혼내고 출근했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해설할 때면 좀 욱신 할 때가 있어요."


이야기를 마치자 마자 고개를 돌려 그 분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제가 본 그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얼른 데스크로 달려가 휴지를 뽑아 왔습니다. 그 분께 건네 드리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뭔가 잘못했을까, 내가 불쾌하게 해드린 지점이 있었나. 조금 진정이 된 그 분이 입을 떼셨습니다.


나와 내 딸의 모래시계가 이 작품 같다면 좋겠습니다.


이 분은 두 딸과 한 아들의 어머니였고, 그 날은 항암을 하고 입원을 했던 둘 째 딸을 병간호 하다가 첫 째 딸과 잠시 보호자 교체를 하고 나온 날이었다고 합니다. 둘 째 따님은 벌써 여덟 번 째의 항암을 견디고 있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마음 둘 곳 없어 사람 많은 곳이라도 들렸다 들어가야겠다 싶어 백화점에 들어왔지만 사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없어 그저 돌아다니다 갤러리에 들어오셨다고.


"나와 내 딸의 모래시계가 정말 이 작품 같았으면. 내가 많이 시간을 썼고, 내 딸에게는 많이 남아 있다면. 난 그러면 세상에 바랄 것이 없겠어요. 정말 그 아이가 나보다 훨씬 오래만 살아준다고 하면 난 지금 죽어도 좋아. 정말 이 모래시계 같았으면 좋겠어요. "


아무도 없는 점심 타임의 백화점 속 갤러리. 펑펑 울고 계신 한 어머니를 전 저도 모르게 끌어 안았습니다. 정말 제 엄마 같은 마음에 그 분을 안고 짧은 순간이지만 이분에게 내가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저 모래시계처럼 이분과 따님의 시간이 흐르길 정말 간절히 기도했어요. 저도 흐르던 눈물을 얼른 훔치고 그 분 어깨를 잡고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 했어요.


"세상에. 무슨 운명 같지 않아요? 이 사진을 만난게요.(테리보더의 작품은 사진입니다) 정말 이렇게 되실거에요. 따님 항암 정말 잘 이겨내시고, 건강해지실거고 두 분 모래시계는 이 사진처럼 그렇게 흐를거에요. 아마 어머님(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은 장수 하실거고, 그 옆을 둘 째 따님도 함께 지킬거에요. 따님도 항암 잘 견디고 있다면서요. 정말 이 작품처럼 될거에요. "


"맞아 꼭 그럴거야. 우리 애가 그렇게 항암을 해도 웃어요. 우리 의사도 그랬어요. 최근에 한 항암제들은 특히 잘 듣는거 같다고. 우리 애 저보다 오래 살거에요. 계속 검사도 받고 병원도 가고 할거니까 분명히 이 작품처럼 될거야."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고 싶다며 작품 사진을 찍어가도 되냐는 말씀에 어유 그럼요 작품과 같이 찍어 드릴까요? 하며 열심히 핸드폰 카메라를 눌렀습니다. 서툰 위로일지 몰라도, 섣부른 위로는 아니었길 간절히 바라며 말이죠. <모래시계 가족>은 전시의 여러 섹션 중 "사랑의 다양한 감정"에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수 많은 사랑의 감정 중, 어머니의 사랑보다 크고 간절한 사랑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 사랑의 힘이 생의 모래시계를 나이의 순서대로 돌려 놓길.


Epilogue

2024년 3월 1일에 시작한 전시는 4월 14일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4월 13일이 마지막 근무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근무일 3일 전, 퇴근 길 지하 1층 식당가에서 그 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활짝 웃으며 "어머 도슨트 선생님!"하고 부르시는 그 분을 보고 저도 모르게 달려가 반갑게 안았습니다. 몇 십년을 알아온 사람 마냥. 따님은 지금 항암 환자들을 위한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자신은 큰 딸과 오랜만에 맛난 한끼를 먹으러 왔다 하시며, 전시를 한 번 더 보고 갈 거라 하셨답니다. 부적처럼 그 작품 사진을 가족끼리 단톡방에 공유하셨다고. 제 작품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부적같은,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는 작품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것. 그건 분명 도슨트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일겁니다.



테리보더(Terry Border)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로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벤트 아트'라 칭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친숙한 물건에 철사를 구부려(bent) 팔 다리를 붙여 의인화 해 상황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구부린 아트, 벤트 아트라고 칭하는 것이죠. 의인화해 표현하지만 눈코입을 붙이지는 않습니다. 표정을 알 수 없을 때 작품을 보고 관람객은 오히려 더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데요, 제 경험상 그 전략은 매우 성공적입니다. 표정이 없는 물체에서 어떤 감정일지 그 표정이 마음속에서 보이더라고요.


작업의 방식은 그렇게 사물로 만든 기물을 상황을 설명하는 무대를 꾸며 놓고 그 안에 연출시켜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전시합니다. 백희나 작가도 동화속 캐릭터의 모습을 상황에 연출시켜 사진으로 찍은 후 그 이미지를 동화책의 삽화로 사용하잖아요. 비슷한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비나미술관의 기획으로 <EAT PLAY LOVE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라는 제목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상설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위트있는 표현과 때로는 블랙코미디로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합니다. 미술관은 어려울 것이다, 재미 없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깰 수 있는 전시이자 어린이들도 무척 즐기는 전시니 혹시 근처에서 만나보실 수 있다면 꼭 한 번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도슨트의 꿀팁을 하나 드리자면 전시를 본 후 sns에  #TerryBorder 해시태그를 걸어두면 작가가 와서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한답니다. (제 경험상 50% 이상)


우리 나라에는 테리보더가 삽화를 넣고 동화도 쓴 어린이 도서 『땅콩버터와 컵케이크』, 『아슬아슬 과자 삼총사』, 『도망쳐요 과자 삼총사』가 비룡소 출판사를 통해 소개 되었는데요, 자녀가 감정이입을 잘하거나 공포를 잘 느낀다면 뒤의 삼총사 시리즈는 조금 자란다음 읽혀주세요. 마지막이 다소 잔인한(?) 결론이라 감성적인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답니다. (그러기만 하면 다행인데 "엄마 그 친구는 어떻게 됐어?"라고 하염없이 반복하는 질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실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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