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생각하며
어제저녁 시켜 먹은 볶음밥에 탈이 났다. 오래전 기억으로 쑥떡을 먹고 급체했던 기억 이후에 가장 안 좋았던 경험이었다. 그나마 한 알 챙겨 먹었던 소화제마저 다 게워내고, 전기찜질기를 안고 잠이 들었다. 일찍 잠든 탓인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눈이 떠졌고 세수만 대충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나와, 그냥 걷기 시작했다.
멍한 상태기도 했지만, 날씨도 좋고 걷다 보면 컨디션도 회복되고 기분도 나아지겠거니 생각했다. 숨이 가빠지고 땀이 흐르니 잡생각이 사라지고, 지금의 나의 모습에 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운이 좋게도, 결정적인 시기에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좋은 성과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모두 즐거운 것은 아니었겠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채워주고 이끌었다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가치관이 다른 이들과 한 팀을 이루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순간순간의 화를 누르며 참 잘 견뎌왔구나 싶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사냐'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이럴 땐 진리라며 당연히 받아들이는 내 모습이, 결국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야 아는구나 하는 당연한 탄식으로 끝이 났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특히 새벽시간대 걸으면서 생각하고,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들을 메모장에 기록하거나 음성 메모로 남기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정리하며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껴보곤 한다. 3년 전쯤엔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담담히 써 내려간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가 신었던 워킹화가 무엇인지 사진을 비교해가며 찾아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걸었고, 2019년 4월에는 집(과천)에서부터 뱅뱅사거리에 있는 사무실까지 편도 9.65km를 걸어서 출퇴근하며 3개월간 20킬로를 감량하기도 했다. 네가 김신조냐며 놀려대는 선배도 있었고, 때론 잘못 깎아놓은 발톱이 파고들어 피가 나는데도 걷기를 멈추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거를 한번 해보자 생각하면 미치도록 빠져드는 습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꽤나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기록들을 바인더에 정리하고, 사진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그 순간들이 글이 되곤 했다. 매번 지나고 마주치는 같은 길이었는데, 달랐다. 봄이, 여름이,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매 순간 달랐다. 그 길 위에서 흘린 땀도 다르게 기억되었다. 때로는 고통으로, 가끔은 환희로, 그리곤 이내 추억으로. 그래서 2019년도 어느 날 나의 바인더에는 이렇게 적힌 날도 있었다. '양재천을 걸으며 사색하고 독서로 마무리되는 걷기 모임 만들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박아 넣고 모임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나에겐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
나를 찾아가며, 성장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정확한 기억으론, 2018년도 7월부터 채용 및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기록하며 복기하는 과정에서 별도로 이런 내용들을 글로 옮겨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와 조력에 감사함을 표현했고, 그들이 원하는 삶에 근접한 인생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일들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팀원들과 조직의 성장에도 깊이 관여할 수 있는 업무를 하고 있으니 이 모든 과정들이 긴밀하게 얽혀있으며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를 불러오기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 여기가 끝은 아니며, 결국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예상치 못한 시기에 도달할 것임을 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운 좋게 그러나 단계적으로.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 설령 그렇게 된 것이라 여기는 이들의 이야기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순간과 과정은 존재한다. 그 모든 점들을 연결하여 결과에 이르게 된 시점이 예상 밖이었을 테니 '하루아침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듯싶다. 그래서 더더욱 난, 내가 기분 좋아지는 일을 해야 한다. 때때로 끼어들 원치 않는 일들이 분명 존재하고 난무할 것이기에, 인지하는 순간순간에는 나의 정성이 깃들어있고 영혼을 들뜨게 할 그런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상처뿐인 영광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영광의 순간에 나의 사람들과 축배 정도는 들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렇게 걸었다. 오늘도 내가 걸은 걸음은, 나의 역사가 되고, 꿈이었으며, 쉽지 않은 도전이자 실행이었다. 그리곤 해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나의 시간은 내가 그리던 '기분 좋은 일'을 하며 간소함이라는 호사스러움 또한 누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늘 상상해왔던 일을 한다. 언제나 기분 좋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