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story May 05. 2024

휴식은 반드시 필요한가요?

퇴사한 은행원의 열다섯 번째 인터뷰

 휴식이라는 의미를 '육체적인 쉼'으로만 해석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꼭 릴랙스 하는 것 이외에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인데, 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방해받지 않을 일정을 포함시켜요. 실무적인 노동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이 시간은 제 머릿속에 부유하는 많은 생각들과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한데 모으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시간들입니다. 물론 이 작업의 영역은 때로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업무의 영역까지 미치기도 합니다. 이 습관은 은행을 나온 이후 스스로 번아웃을 피하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일을 좀 더 재미있게 몰입해 보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었어요. 사고의 정리 없이 인풋만을 늘려간다고 성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무엇이든 내가 이해하고 인지한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한 기사에서 어떤 리더 또한 이런 일정을 하루의 일과 중 반드시 포함시킨다는 글을 읽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리더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기도 했고요.




  균형 잡힌 자기화를 잘하기 위해서 저의 사고가 일방향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도울 수 있는 것이 하루 중 2시간 정도는 나만의 생각과 의견들을 정리해서 업무에 적용시킬 수 있는 틀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어요. 이 시간이 되면 맥북이나 아이폰을 자리에 두고 저는 보통 포커스 룸으로 향합니다. 만년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만을 들고요. 책을 읽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시간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하루 중 70~80%, 많게는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매 한 시간 혹은 30분 단위로 미팅이 잡히기도 합니다. 대게 많은 스타트업이 이와 비슷한 상황일 거예요. 그래서 더더욱 다른 일정들이 치고 들어오기 전에, 저만의 시간을 block 해둡니다. 물론 C-Level이기에 이런 패턴을 확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겠다 싶은데, 저희 팀의 매니저분들이나 팀원 분들의 캘린더에서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방해금지 시간'을 찾아볼 수 있고 이는 팀 전체의 생산성에 분명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봐요.




얘기가 좀 돌았는데, 제가 생각하는 휴식은 온전한 쉼의 시간과 더불어 개인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고 봐요. 휴식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무조건 그렇습니다'가 될 것 같습니다. 온전한 쉼의 측면에서 봤을 때, 저는 잘 '쉬는' 편이 아니었어요. 일에 반쯤 미쳐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자기 관리를 못한 탓으로 은행 객장에서 전체 미팅을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중,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도 있었죠. 입원해 있는 동안 제 생각은 온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기업 대출의 연장건과 선물환 만기 관리에 대한 것이었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멈추는 방법을 몰랐던 저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주니어 시절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정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들 또한 이런 환경에서 당연한 듯 일을 해오셨을 테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알아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해야 했어요.



서른 중반 은행을 퇴사하기 전까지 똑똑하게 일하는 법을 깨닫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지난주 마흔이 갓 넘은, 은행 동기인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두 번째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너무 막막하다는 거죠. 이직 시장에서의 은행원에 대한 평가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이직 또한 만만치 않다는 얘길 했어요. 쉼의 시간과 더불어 나만의 Focus Time을 잘 활용했다면 조금은 다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번 주말에 만나면 어떤 얘기들을 해줘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2008년 은행원으로 일을 시작하고 16년이란 시간 동안 다섯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 외에는 쉬었다고 생각될 만한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섯 번 중 두 번은 은행 내 프로그램으로 다녀온 것이고, 나머지 두 번은 신혼여행과 첫아이의 태교여행이었어요.



 제주도로 간 여름휴가 도중, 업무로 인해 휴가를 취소하고 서울로 올라온 적도 있었습니다. 재직하는 기간 동안 5일로 주어진 자기 계발 휴가를 온전히 사용한 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긴 휴가를 내어 어디를 다녀와 본 기억이 없어요. 누가 그러더군요. 그렇게 일했으니, 지금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요. 부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온전한 쉼과 개인정비의 시간을 일찍부터 잘 활용했다면 은행에서의 경험은 5년이면 충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후의 5년간 더 자유롭게 도약의 시간을 준비하고, 이후 5년은 경제적 자유와 업무 전문성을 고도화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겠죠. 좀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더 잘 해낼 수 있었는데, 저의 지난 시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역시,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십 대의 후반 그리고 삼십 대 중반을 보내고 있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혹시라도 더 나은 스스로의 직업적 삶을 가꾸길 바라신다면, 온전한 휴식과 개인의 생각들을 정비할 수 있는 Focus Time (Project X라고 부릅니다)을 정말 잘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살리는 하루 90분, Project X


이전 15화 한 가지에 집중 vs 다양한 경험, 도움이 되는 것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