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나에게 좋은 운이 들어오게 하는 여러 방법들이 존재합니다.
은행을 퇴사하고 지난 8년간 제가 터득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포기'였습니다. 대게 오랜 시간 내가 이것을 해왔다는 이유로 다른 길을 찾거나 항로를 벗어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합니다. 저에겐 퇴사 몇 년 전부터 이런 신호들이 있었어요. 이유 없이 출근하기가 두려워진다거나 자꾸 다른 직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 같은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버텨보려 할수록 아프거나 쓰러지거나 하는 일들이 생겼죠. 어떻게든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 했던 그때의 저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껏 은행에서 보내온 시간과 소모한 에너지에 대한 본전 생각이 컸어요.
당시에는 이 길 아니면 없다는 생각, 그리고 다른 길을 향하고자 마음먹게 되어도 가족과 주위 지인들의 반응이 제일 두려웠습니다. 회사 밖은 지옥이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은행 안이 온실이니 버텨라 등등. 저는 그런 프레임 안에 10여 년간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주도권 없는 삶의 객체로 전락해 있었어요. 은행에서의 업무와 그 중심으로 짜인 하루의 패턴이 제 삶을 지배했고 스스로도 무엇을 추구하고자 하고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두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놓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저는 어떻게든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한 거죠. 아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반대한 길이었지만, 8년이 지난 지금은 용기를 냈던 그 시절의 제가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의 선택을 지지하고 믿어 준 아내에게도 진심으로 고맙고요.
포기를 뒤로하고 달려온 새로운 길들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퇴사 이후의 삶이 제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평소 가까웠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냉정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는 조직과 사람에 기대는 것이 아닌, 내가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어요.
서른 중반에 다시 시작하는 커리어를 더 잘 만들어내기 위해 달려온 시간들은, 말 그대로 멀리서 보았을 때는 희극이었고 순간순간은 비극이었습니다. 내가 포기했던 것의 대가가 비정상적으로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에 대한 후회가 되지는 않았어요. 죽도록 힘들어도 이제 내가 설계하는 인생의 주도권을 가진 주인이 되었다는 생각만으로도 계속 나아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무너지고 또 일어서고를 반복했고 안정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4년간의 시행착오가 제가 지불했던 비용이었습니다. 그 결과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고 언제 가장 행복하며, 타인과 조직의 성장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며 안정되고 여유 있는 사십 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려놓음을 선택했던 그 순간부터 저에게는 새로운 문이 열렸고, 더디 가더라도 계속 걸었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저는 은행을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겠지만, 시행착오를 줄여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건 아니라는 내 안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메아리칠 때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느냐 하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순간적으로는 반응하더라도 이내 포기합니다. 새로운 두려움보다 익숙한 고통을 선택하는 거죠. 이전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잘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아이들이 커가고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 굳이 위험부담이 큰 결정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제 스스로 저의 좋은 운을 모으고 또 끌어당기게 된 시점이 이때부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자 고민했던 시간들이, 내 인생을 존중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되었고 그때부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이겨내고 또 나아갈 수 있는 힘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그때 포기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긴 어려웠겠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로 불편한 걸음으로 인생의 긴 시간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전 제 자신을 존중하는 선택을 했어요. 그 후로 좋은 시절에 감사한 사람들, 그리고 천금 같은 기회와 운이 함께 했습니다.
내려놓음, '포기'를 선택하면서부터 달리 쓰이고 있는 커리어의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진심으로 내가 선택하고 부딪히며 온전히 나로서 승부를 볼 수 있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연봉 2억이 아닌 10억 또한 기대해 볼 수 있는 이유는 나답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을, 포기를 선택할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