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관심과 애정이 도리어 해가 되는 직장생활
일을 하며 소음을 차단하는 몇 가지 방법 중 선호하는 것이, 공간의 변화이다.
근무지를 이탈할 수는 없으니(같은 건물에 위치한 커피전문점을 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사무실 내에 집중이 수월하거나 예약되지 않은 미팅룸을 찾는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자리에 두고 노트와 펜만 들고 정리가 필요한 일들에 몰입한다. 공간이 분리된, 특히 출입문이 있는 미팅룸에 있는 경우 정말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내게 불요한 사소한 일들에서 거리를 둘 수 있고 더 단시간에 해내야 하는 일들을 쉽게 마칠 수 있다. 또한 문서작업이나 성과 측정과 평가 등 노트북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도 업무용 메신저를 오프하고 불필요한 창들을 모두 내린다. 작업을 요하는 문서 하나만을 띄우고 집중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난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일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가다 보면 쉽게 길을 찾는다. 어지러운 소음 속에서 스스로를 구해 중요한 일에 빠져들다 보면 그간 나를 괴롭히던 많은 문제들에서 빛을 발견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나의 신경은 꽤나 업무와 관련된 '주변' 부에 머물러 있었구나 싶었다.
사람 간의 관계와 그들의 대화, 옆 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 퇴사하는 직원의 잡다한 이야기, 조직과 직원에 대한 험담 등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많은 일들에 나는 필터 없이 빠져들었고 흔들리기도 하였다. 왜였을까. 나는 나와 관계없는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존중받고 싶었다. 나의 생각을 존중받고 싶었고, 주관적인 조직의 올바른 기준에 대한 직원들의 환기가 필요함을 존중받고 싶었다. 그러나 빠르게 내달리는 조직에서의 정성적 발전에 대한 기대감은 정량적 성과의 진보에 우선할 수 없었고 불필요한 리더로 비치기도 했다. 수많은 구성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조직에는 상이한 성향과 기준을 가진 이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서로 끌어당길 수 있는 이들끼리 작은 부락을 형성하며 부정적 변질이 가미되는 경우 정치적인 사조직으로 변태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과 변화는, 무엇보다 자극적이지만 볼거리 없는 저잣거리의 풍문과도 같다. 없는 볼거리에 비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많은 경우 이것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직에 적응하며 이런 상황들을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으나 받아들이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타고난 관심차단술을 보유한 개인이라면 동요 없이 지속적 생존이 가능하다.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만 몰입하고 그에 대한 합당한 성과가 이뤄진다면, 동료들과 깊게 어울리지도 그렇다고 척을 지지도 않는다. 가정에서처럼 독립된 '나'로 존재하고 주변부 행성도 이들을 향해 추락하진 않는다. 존재감이 없어 보이나 그 자체로 단단하며 강하다. 나는 정확하게 오늘 이들이 부러웠다. 역할들로 인해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부러워할 수밖에 없겠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노을이 뒤섞인 흰붉음에 소모적 감정을 태워버리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터에서의 삶의 본질에 몰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의 일로 성장해야 하고 평가받을 것이며 이는 내일의 창으로 연결될 것이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곳이 희극이거나 비극이거나 감정의 휘둘림 없이 온전히 내가 선택한 나의 걸음으로 당도한 곳이길 소망한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수북이 쌓인 내 주변의 티끌과 수북한 먼지들을 걷어내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야 한다.
나다운, 나의 진정한 삶은 비로소 그 순간 시작될 것이기에.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도달해야 정수를 알게 되고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무가치한 소음들 속에서 나 스스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가 매일 눈뜨게 되는 이 기적은, 이 모든 직장에서의 계산과 눈치싸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선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