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곳에서 자라난 생각이 글이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다
내 삶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이유는, 생각 그 자체로 진공상태에 부유하기 때문이다.
6년 전에도, 2년 전 어느 날에도, 두어 달 시점에도 퇴근길 지하철역 동작대교를 바라보며 난 같은 생각을 했었다. 나의 삶이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과는 판이 다른 무모한 도전을 하고 싶다고. 그런 즉흥성은 늘 가슴이 설레고 가늠할 수 없는 내일의 모습에 압도되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때로는 그저 벗어나고 싶은 오늘이라서, 어떤 때는 피하고 싶은 장애물들의 연속인 하루가 버거워서 그런 생각 뒤에 숨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은 위로가 되고 짧지만 막연한 희망이 주는 설렘을 느낄 수 있었기에. 하지만 이내 다다른 곳은 현실 속 나의 모습이었다. 버릴 수 없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괴로움 뒤에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언제나 존재했다. 그들을 핑계 삼을 생각이 없고, 때론 그들이 도전회피의 중대한 피난처가 되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오늘에 안주하고 내일도 그럭저럭 보낼 수 있는 이유가, '이만큼의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하는 대상이 있음'도 한몫할 텐데 보장되지 않은 내일에 나를 포함한 나의 사람들을 담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생각만으로 스스로의 안전한 선택을 합리화하는 동안 5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언제가 끝일지 모를 이 경주에서 나는 한번 더 후퇴한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경험 많고 잘 교육된 성인이 세상 가장 미련한 행동을 하고 있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갇혀서 말이다. 그 누구도 이런 생각의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알려준 적이 없고 12년을 다닌 학교와 그 많은 돈을 투자하며 다닌 학원에서도 나에게 이런 가치 있는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평범하게 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일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강조했을 뿐. 하나 이 마저도, 이렇게 말을 잘 들었던 것 마저도 선택권 없었던 나의 선택이긴 했다. 사십 중반이 된 나의 실절은, 공부 안 하면 공장 가서 일해라는 식의 말을 듣고 자랐기에 공부를 못하면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는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공격을 받았어야 했다. 엄마아빠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는 스무 살 가까이 매년 듣던 고정적인 새해의 덕담이었고 자라는 동안 단 한순간도, '너의 인생을 살아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어른이 없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아버지와 교수의 딸로 50년대에 태어나 학창 시절 내내 예술교육을 받고 자란 어머니 아래에서 난 제도권에 진입하기 위해 조련당하는, 그러나 죽도록 말 안 듣는 학생이었다. 그마저도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십 대였기에 '진정한 어른'의 이야기 또한 간접적으로나마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다. 여차저차 그럭저럭 좌충우돌하는 동안 감사하게도 좋은 운이 함께했으나 그 마저도 내가 누리는 이 생에서의 시간들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은행의 퇴사를 고민하던 서른 초반 즈음이었고 두려움과 반항심 그 사이 어느 정도에 위치할 만큼 모호한 선택들에 대한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대혼란의 시기였던 것이다. 도전의 결심, 선택, 탈출, 또다시 방황, 포기.. 모든 것들이 연속적으로 예고 없이 일어났다. 파도에 떠밀리듯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인생의 정답지라는 보물지도를 찾아 오답 투성인 삶의 대역전극을 펼쳐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흘러가는 이 시간의 끝자락은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고 그 누구도 미리 살아본양 대할 수 없는 순간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선험자의 조언은 수억만 아니 수조 개의 레퍼런스 가운데 하나이고 이것이 내게 적중하는 족집게 인생강의 일 수가 없다. 결국 난 오로지 나로서, 나다운,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하고 그것이 우리가 이번 생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작품인 것이다. 여행처럼 오늘을 대한다면 고민과 걱정대신 경험 그 자체에 의미를 둘 것인데, 그래야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내 인생에 덜 미안할 텐데 너무나도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한 가지는 글쓰기.
어둠에서 생겨난 생각이 글이 되고 그것이 연료가 되어 마음에 불을 지펴 내가 가야 할 곳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그런 간절한 소망을 품고 때론 즉흥적으로 가끔은 고쳐쓰기도 또 어떤 때는 의무감으로 쓰고자 했던 것은 이 여정이 나만의 이야기로 기록될 것이고 어느 순간 서서히 빛날 나의 역사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여물기 위한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이 과정에서도 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으며 내일의 내가 향해야 할 곳에 서있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생각의 웅덩이에 표류만 하다 끝날 인생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