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 꾸준히 진심인가
시작했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순간의 선택에 반짝 몰입하는 척,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의 레이더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를 셀 수 없이 반복했다. 그래서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은 꾸준히 무언가를 해온 결과가 아닌, 때와 시간과 장소를 잘 만났던 ‘운’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에서의 성공은 지속의 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마흔 중반의 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 꾸준했었나를 돌아본다. 걷고 달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런데 이 마저도 습관이라 자랑스럽게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지속성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적당히 그리고 상황이 허락할 때라는 전제가 있었다. 오늘은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아서, 퇴근이 늦어서, 회식으로 과음을 했기에 잘 쌓아오던 습관이 하루이틀 무너지고 그 편안함에 일주일을 그냥 흘려보냈던 적이 많았다.
성공이 지속의 역사라 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이 반복을 통해 나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기다리는 것에 집중하며 점차 ‘나 자신’ 이 되어가기 때문이고 매 순간 내 삶의 주도권을 강하게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주위를 신경 쓰고 의식하며 나의 뜻에 의문을 품거나 눈치 보며 자신의 노선을 변경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내 생각대로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무엇을 지속하는가는 신중하고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 어느 누군가는 아주 쉽게 그 대상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대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데에는 높은 수준의 집중력과 알아차림의 능력이 중요할 텐데 이는 꾸준한 연습과 시도와 매일의 반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 연습에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다양한 상황에서 휘둘리는 나의 감정이 내면의 지각능력을 압도해버리기도 한다. 이때 많은 경우 나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본질을 놓친다. 그렇게 되다 보니 난 또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 ‘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매번 읽는 이의 반응을 생각하고 글을 다듬다 보면 애초에 내가 의도한 직관에 따른 글쓰기와 거리가 멀어진다. 내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퇴고되고 ‘진심’을 다한 글이 아닌, ‘관심을 끄는’ 글이 되어버린다. 물론 글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읽힘에 대한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라 하지만 이렇게 되면 특정 개인의 창작물을 보편타당한 내용의 해설서와 다름 아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을 생각하며 글의 처음을 시작하다가도 그 끝은, 많이 읽혀야 하는 글이 된다는 기준으로 변하게 된다. 나다움에 길들여지지 않은 탓에,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바로잡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내가 지금 꾸준히 해내고 있는 것들을 돌아본다. 취침과 기상은 꽤 정해진 시간에 잘 해낸다. 새벽러닝은 주 4회 이상을 하고 있고 주말에는 등산을 하거나 트레일러닝을 하고 있다. 매일 독서와 글쓰기는... 동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밥은 꾸준히 먹는다. 먹는 것을 즐기는 나의 하루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지금의 삶의 패턴을 바꾸고자 노력한다. 특정 조직에 소속되어 나의 생각이 아닌 기업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삶을 되도록 빨리 끊어낼 수 있는 힘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공부를 하고 강의를 듣고 생각을 정리하고 느낀 점들을 기록해 간다.
가치 있고 생산적인 반복을 위해서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매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반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써 내려가다 보면 나의 시간이 공중에 흩어지고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는 문제라면 환경으로 차단시키는 결단도 필요하다. 나에 대한 믿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한 열망만 잃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지속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간혹 꽤 오랜 시간 그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알아내지 못했다면 독서와 기록을 꾸준히 반복하며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져가야 할 한두 가지를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유한한, 서글프게도 끝을 알 수 없는 이 생에서의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살아지는 대로 흘러갈 것인가. 지금 반복하고 있는 것들에 의해 전혀 다른 전개가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