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차이, 한계가 만들어내는 비밀
우리네 조직은 계급과 서열이 존재한다.
'-님' 문화를 자처하는 스타트업 또 그런 문화를 표방하고자 애쓰는 기업들조차도 입사 시 레벨이란 것을 부여하고 그에 맞는 연봉 그리고 보상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 구조에 기반한 업무지시가 이루어지며 평가가 진행된다. 수직적 구조의 최상단을 점유한 이들이 갖는 권한은 기간의 제한이 있을 수 있으나 막강하다. 이는 어떤 면에서 한계를 갖지 않는 행동의 범위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생각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생각의 한계는 조직의 룰, 이성적 판단, 잠재의식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한계가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된다. 태생적으로 피지배의 신분일 수밖에 없는 15세기의 환경들은 차치하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내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취업이란 것을 하고자 했을 때부터 말이다. 반대로 남들과는 다른 상상과 생각 그리고 행동에 제약 없음을 희망하는 이들은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꿈꾸며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일반적인 출발'을 거부한다. 상이한 두 지점에서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사실이 있다. 피지배의 위치에서도 생각의 한계를 적용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눠지기도 하는데, 조직에서 인정받고 지배자의 위치로 성큼성큼 나아가기도 하고 시대를 앞서가거나 조직에 적응하기 어려운 부류로 인식되어 뒤늦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기도 한다. 물론 한계 없는 생각만 갖고 있다고 범주가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실행과도 연관이 되어야 하고 그로 인한 결과물들이 있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생각'이다.
가령, '나는 팀원이니까 지시받은 일을 잘 해내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오히려 지금은 생각을 줄이고 행동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가진 신입사원이 있다고 해보자. 팀에 활력이 되고 기동성을 높여주는 이 생각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다. 경계해야 하는 사실은, 이런 생각이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나의 직무적 정체성으로 각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십 년 이십 년 동안 이런 생각으로 은행에 다니는 선배들을 숱하게 봐왔다. 한 조직에 장기간 피지배의 위치에서 일하며 생각의 울타리가 굳건하게 쳐져있던 이들이었다. 그들의 조직에 대한 기여가치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래도 한때 이름깨나 날렸을 그들이 이런 삶(안온할 수 있으나 그 이상의 발전과 진보를 꿈꾸지 않는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오랜 세월 지시받은 일의 '실행'에만 매몰되어 외부의 환경과 새로운 방법들을 고안해 내고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역할은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불필요한 행위로 치부하였을 지난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아쉽다.
우리는 저마다의 믿음을 갖고 있다.
내가 쳐해 있는 상황에서 가장 잘 해내야 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인지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고민하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행위가 지나치게 축소 되어있거나 아예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마다 꿈꾸는 이상이 있을 것이고,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었으면 혹은 성공의 길로 접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생각의 뿌리를 내려볼 수 있다. 해봤자 안될 거이다라고 생각하는 불요한 잠재의식을 걷어내고, 좀 더 자신을 신뢰하며 한계란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공고히 할수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와 모든 과정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조직에 속해있는 이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지시받은 업무를 잘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잘 지나온 이들이 조금씩 지배의 권한 또한 갖게 됨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흐름에서 추진력을 얻게 될 이들은 스스로의 믿음과 생각을 제한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이야기들을 꿈꾸며 주체적으로 그런 그림들을 그려가는 사람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