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를 죽도록 싫어하는가

불편한 동료에 대한 감정의 이유

by Davca

알아차림과 받아들이기.


어떤 사람을 떠올리다 보니 순간 짜증이 밀려온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매일을 같은 일터에서 마주하는 사람이기에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쌓여온 묵은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찰나에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진행되던 좋은 일들도 쓸려내려 간다. 감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시하려 애를 써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골만 깊어질 뿐이다.



며칠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 때, 조금은 거리를 두고 나의 감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지금 이 사람의 어떤 말에 난 또 감정이 상하네. 그런데 이 사람은 내 감정의 동요를 의도한 것일까? 그렇게 느낀다면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의도성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시의 상황과 대화의 주제 등을 고려했을 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고 심지어 입장을 바꿔 생각했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난 예민한 반응을, 특정인에게만 보이는 것인가. 지난 시간들의 기억에 의해 각인되었을 몇몇 이벤트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 때문일 수도 있겠고. 이렇게 따지고 보면 불편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 감정이 퍼지는 것의 출발은 나 때문이지 않은가? 혼란스러웠다. 난 여태껏 그 사람이 특정 목적을 갖고 나를 공격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선입견을 강하게 갖고 있던 쪽은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내 감정들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의 불편함은 어떤 면에서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그 사람이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라면 이에 대한 생각은 증폭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향이 업무의 성과 그리고 평가에 연관된 성질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 이러저러한 상황들 날려버리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볼 때 어지간히 답답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감정으로 아까운 시간들을 걱정, 짜증스러움, 스트레스, 답답함, 압박감 등으로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제삼자의 관점으로 오늘의 감정을 들여다보니 조금은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했고 이에 대한 셀프 피드백 또한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오늘부터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감정이 일었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감정을 소모할 이유가 없는 대상에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으며 조금 더 나의 감정을 살펴, 나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이었다. 수도 없이 마주치는 많은 이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미지, 감정을 가둬두지 않고 제로의 상태에서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결국 나를 지키고 감정의 동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임을 나는 '알아차리고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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