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빠

한 번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솔직한 이야기

by Davca

아빠의 역할을 생각할 때 숨이 조여올 때가 있었다. 나는 아빠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고 너희들처럼 꿈이 있었고 큰 걱정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연에 가까운 인연으로 너희 엄마를 만났고 그렇게 선물과도 같던 너희 둘을 얻었다. 지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 잠깐 스쳐 지나갔던 감정들에 대한 배설이라 생각해 주면 좋겠다. 내가 나 자신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고 싶다고 해서 가족을 '버려두는' 행위를 할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살면서 그런 얘길 많이 듣기도 했고, 종종 방송에서도 들었었다. 낳았으면 책임을 지고, 책임지지 못할 거면 낳지를 말라고. 책임의 정도와 강도 그리고 회피 가능성의 유무에 따라 출산을 한다면 과연 그 시절 자신 있게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자연의 섭리였기에 따르는 것이고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생명의 나고 짐은 그런 것이기에 인위적으로 손댈 수 없고 손대서도 안 되는 영역이라는 확신이 내겐 있었다. 그렇다고, 생겼으니 '어쩔 수 없이 낳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첫째가 딸이라 난 기뻤고, 둘째가 아들이라 복을 타고났구나 생각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났다.


여전히 난 너희들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있고, 더불어 너희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있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우유부단하고 걱정도 많고 그래서 매 순간 흔들린다. 가끔은 어떻게 조직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신기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마도 내 안의 다른 자아가 숨 쉬고 있는지도.

그렇게 살던 내게 최근에 한 가지 생각이 날아와 꽂혔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우리는, 또 너희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모의 자격을 갖고 있는 네 엄마와 나는, 가족이라는 범주로 인해 어디까지 희생하고 양보하고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쉽게 결론 날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문제인 것 같지만 내가 희망하는 답은 늘 한결같았다. 나는 나의 생활이 있어야 하고, 네 엄마 또한 쉼과 배움의 시간이 있어야 하며, 너희들 또한 학업에 짓눌리는 시간보다 더 큰 자유와 생각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사색과 상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고유의 시간에는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희생과 공헌을 기대해선 안된다.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과연 이것이 이 생에서 가능한 부모의 아량이고 배려일지 나도 확신이 없다. 그래도 지향해보고 싶다. 이것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영역과 공동의 영역에서의 역할을 강요 없이 스스로 잘 해내야 한다. 밥을 먹으면 정리하는 시간을 공유해야 하고, 더불어 식사준비 또한 엄마만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말 아침의 청소와 가족의 독서시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함께 힘을 모아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같이 해야 한다.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개념 말고 같이.


여전히 난 읽고 싶은 책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앞으로 나의 삶이 늘 꽃밭일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난 나의 길을 가고 싶고, 그 과정에 부모이기 때문에 아빠이기 때문에 가장이기 때문이라는 서글픈 조건을 두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계속해서 얘기했던 한 가지, 너희들의 삶을 살 수 있는 준비를 지금에서부터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넷은 같은 방, 연달아 이어 둔 침대 3개에서 함께 잠을 잔다. 우리가 가족이기에 절대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먹고 자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다시, 아빠라는 이름의 의미를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 다음에 아빠라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너희들 각자의 생이 주어진 이후 지녀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성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동안, 꽤 긴 시간 너희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겠지만 개별 인격체로서 너희들을 존중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한 사람, 네 엄마이자 나의 아내. 엄마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인정하기까지 아직 너희들에겐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 거라고 봐. 당장 너희들이 철든 성인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너희들이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만큼, 엄마에게 끊임없이 하는 너희들의 주문도 엄마에겐 달가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 모두 인간이고, 우리가 원하는 행동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게 되잖아. 이걸 기억했으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에게 부탁하는 존재라고 말이지. 그 말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수 있다는 거거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당연한 듯 여기지 말자. 우리에게 총체적인 범위에서의 '사고'라는 불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나 엄마는,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너희들만큼 길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들의 인생이 진정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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