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새벽 출근길, 짜 맞춰진 것처럼 흘러가는 규칙적인 일상의 단조로움이 주는 여유가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보통은 평일과 주말이 차이가 있고 정신없이 바쁜 시즌의 루틴이 다르다.
오늘 같은 하루의 휴가는 우선 여유가 있다.
최근 들어 내 삶의 1순위 가정과 관련된 일들을 주도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돌린다.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도 한다.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방을 정리하며 건강한 나의 아이들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가정에서 아빠라는 존재로 함께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에 소홀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반성 또한 이어가 본다. 앞으로 다가올 내일에 대한 준비와 함께 지금 이 순간 나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들에 더 몰입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여기서부터 무언가 꿈틀거린다.
그것이 무엇일까? 매일 꾸준히 하는데, 나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그것 말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며 나누는 것. 도무지 어느 순간부턴가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을 만큼, 별것 아닌 것이 점점 더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글을 세세히 읽어주는 독자는 아닐 수 있겠지만 한 명 두 명 늘어가는 구독자와 조회수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매일 쉬지 않고 올리자는 다짐이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꾸준한 척이라도 해보려 놓치기 싫은 기록의 모음인 셈 치고 어떻게든 남겨보려 했다. 언젠가는 이 기록들이, 그리고 이 과정에서 쌓이게 되는 나의 실력들이 나의 밥벌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니 최대한 순수하고 영감이 깃들어있는 채로, 그렇게 계속해서 써나갔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시작하는 블로그도, 필요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그들의 삶을 톡톡 쳐주는 정도의 스치는 듯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은행을 퇴사한 뒤로 꾸준하게 독서와 기록을 이어온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다.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며, 회사에서 내 인생의 대안을 찾아보려는 무지한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현명함을 알게 되었다. 끝이 아닌 시작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며 그 과정이 결코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아도 첫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모르지 않았으나 인정을 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다수의 일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야 하니 말이다. 그것도 사십 중반에. 옳고 그른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을 찾겠다고 아우성치는 내가 대단해 보일 때도 있었고 무모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가장 나다운 결정을 해야만 했다.
결국 그렇게 되어간다. 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 내 삶이 되어가고 인생의 주축이 되어간다. 그것이 책과 글이라니, 여간 멋진 것이 아니다! 축복이자 선물 같은 시간들만 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 오후 걸었던 숲길의 단풍과 가을바람 그리고 하늘은 더없이 포근했고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