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story Nov 16. 2024

퇴사한 은행원의 어제와 오늘

아내와의 평일 데이트

 모든 기상 알람을 off해도 가볍게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여유 있게 일어나 40분 정도 땀을 내며 달린다. 출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러닝은 나의 보폭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별것 아닌 이 시간으로 나의 하루는 밀도가 다르다. 30분만 달려도, 그게 엄청난 기록의 결과를 낳는 수준의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나의 시작은 매우 괜찮은 수준으로 올라간다.




@한스케이크 과천점


사진을 이렇게 밖에 못 찍는 나는 늘 타박만 받는다


비 오는 평일 오전의 한적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잘 내려진 아메리카노 한잔과 쇼콜라케이크, 딸기 생크림 케이크는 운동으로 소진한 에너지의 보충을 돕고, 이 순간의 감사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계획 없이 그저 걷고 손잡고 웃다가 장난치다가 사진 찍다가 또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일상은 꽤 빠르게 흘렀다. 일하는 게 더 쉽다는 얘기가 절로 나오는 걸 보며, 육아의 고단함과 바쁜 일정의 순환을 그간 혼자 감당해 온 아내가 대단해 보인다.



 20년 가까이 일만 한 나를 보는 시선도 비슷하겠지, 나는 돈을 벌었고 너는 아이를 키웠고. 이 두 가지의 현재 시점 완성된 버전이 오늘날의 우리 모습임을 생각해 보면 너나 나나 사뭇 대견스럽다




11월의 재충전 시간 동안 그간 하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것들, 가족 그리고 아이들과 관련된 일련의 행위들에는 제대로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나의 시간을 갖는 것에도 충실하고 있고. 그럼에도 너무나도 빠르게 흐른다. 일할 때는 더디 가는 시간도 하루의 휴식에는 찰나에 불과하다. 역시 마음의 문제겠지. 

주말 아침, 아이를 보내고 스타벅스에 앉아 떨어지는 막바지 가을 낙엽을 보고 나의 평화로운 일상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 또한 '토요일, 휴식, 나만의 시간, 베이글과 크림치즈, 아메리카노'와 같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는 이 시간들 때문이리라.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물질의 여유가 참 고맙다. 앞으로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어떤 그림으로 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인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이전에 비해 매우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몇 번의 실패 그리고 그 실패의 반복하더라도 가장으로 돈을 버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취업이자 이직'을 기반으로 한 회사생활이라 여겼었다. 비워내고 또 채워 넣고 또 나를 갉아내며 그렇게 일 년 이년... 십칠 년의 세월이었다. 


결이 다른 방향과 마음의 결심이 필요했다. 


물론 그것이 퇴사일 이유는 없었다. 보다 치열하게 나를 갈아 넣고 짬을 내어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도 하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성공의 스토리가 드러난다. 주머니 속의 바늘과도 같이. 그런데 그리할 수가 없었다. 갈아 만든 배도 배로 만든 것이 맞겠지만, 온전한 배의 맛을 느끼기엔 한참 부족하다. 난 온전한 배로서의 맛을 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멈추기로 한 것이다. 그것 말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여다보고 내 마음속의 울림에 귀 기울이는 것이 쉽지 않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어딘가에 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갈 확률 또한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나 선택의 기준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지켜가야 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보다 선명해졌으니 말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기대되는 이유는 나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과 환경은 그대로이나 마음의 방향이 나만의 자성에 의해 움직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누군가의 종용 혹은 외부의 충격이 아닌 스스로의 결심에 기반한 탓이다. 오늘 아내와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함 또한 이런 연유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길 희망해 본다. 

이전 14화 네 번째 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