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story Dec 15. 2024

작가보다 '쓰는 사람'

'무엇'이 보다 '어떻게'

'무엇이' 되고자 애쓰는 대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지난 6년간 읽어왔던 책들을 정리 중이다. 2주 전부터 시작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책에 남은 밑줄, 형광펜, 메모 등 여러 흔적들에 대한 정리 및 재기록을 미루다 한 번에 몰아서 하려니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소득도 있다. 6년 전의 그 문장들이 이제는 의미가 없어 버리기 쉽다거나,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되기도 하는 표현과 문장을 찾게 된다.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 정성스럽게 기록에 남기고 사진도 찍어둔다. 



이 작업이 지금 나에게 왜 중요한가



'무엇'에 신경 썼던 최근까지, 난 나의 구색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이와 사회적 위치에 걸맞게 집에 책은 1천 권 정도 보유하고 있고,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사용하는 물건도 종류마다 값어치 있는 물건들을 구비해두어야 하고... 이런 것들 말이다. 중요한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있었다. 더 좋은 것을 검색하고, 더 이뻐 보이고 희소성 있는 대상을 찾아 나섬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다. 모두 나의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행위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정리작업은 단지 공간을 정리하고 물건을 처분한다는 것 이외에 '제대로 살기'위한 나만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이는 매일 아침 감사일기를 쓰며 빼놓지 않는 꿈에 대한 기록이다. 

6년째 이어오고 있는 습관인데 이는 내가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하고, 지향점을 아침마다 되새길 수 있게 도와주니 이보다 좋은 습관이 또 있을까.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만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난 그 이후의 목표는 무엇인가. 존재에 대한, 그러니까 '무엇'에 대한 목표가 있었는데 만약 그것을 달성하게 되면 난 그다음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업무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 역시 날이 갈수록 미세하게나마 역량은 증가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소재의 범위도 넓어질 텐데 내가 그토록 바랬던 것은 제한성을 갖는 존재였다. 누군가의 삶에서, 또 특정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미션을 갖고 있는데 마치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한 느낌이었다. 



혼란스럽고 억울했다. 이 얘긴 그 제한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때론 노골적으로도 누군가와 경쟁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쓰는 행위에서 느껴지던 감사함과 벅찬 마음보다 이기기 위한 글쓰기를 해야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2008년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도 높았던 취업문을 넘기 위해 나도 모르는 경쟁자들과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러야 했다. 입행 이후로는 승진이 그랬고, 이직이 그랬다. 존재가 중요한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피평가자 신분으로 같은 범주에 있는 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완벽할 수 없는 역량의 검증 끝에 몇몇 후보자들 중 가장 적합한 존재로 선발된 이가 결국엔 웃는다. 이마저도 시한부 직책인 경우가 대다수다. 역량이 증가함에 따라 나의 고용관계는 단기 계약과 조건부 연봉협상의 카드만이 남았다. 이게 다 제한적인 존재가 되고자 했던 내가 치러온,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결정하는 주관적 평가절차의 생리였다. 왜 난 '어떻게'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왜 그 넓디넓은 인생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며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일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지 못했던 것일까.




목표를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쓰는 사람'으로, 존재가 아닌 행위로 규정하고자 마음먹으니 가벼워졌다.

누군가 많이 읽어주고, 그것도 돈까지 내면서 내 글을 봐준다면 지극히 감사할 것이나 이 자체에 집착할 필요 없이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쓰면 되는 것이다. 이마저도 소수의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이거야말로 거저 얻는 것과 다름없는 커다란 기쁨이 아니겠는가. '어떻게'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가 '무엇'이 될 수 있게끔 언젠가 이끌어줄 것이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나는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밥벌이로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살든, 그저 쓰는 사람이면 족하다.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잘 써야 한다. 잘 쓰는 것은 어렵지 않은 문장들로 나의 생각을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쓰는 것이다. 내 기준으론 그렇다. 읽다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시 몇 줄을 뛰어 올라가 읽어 내려오는 그런 글 말고, 짧은 호흡의 연속이어도 내용 전달이 명쾌한 글이어야 한다. 그렇게 쓰는 내공을 쌓아가다가, 정말 어쩌다 좋은 운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이는 덤과 같은 행운이겠다. 그전에 실력을 갖춰야 하고 행위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부족함을 안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세차게 몰아칠 비바람도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이 두더지 게임처럼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쓰는 사람이 꼭 작가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마케터 일수도, 카피라이터가 될 수도 있다. '어떻게'에 집중을 하니 그것을 더 잘 해내는 방법을 찾게 되고 고민을 하는 과정이 즐겁다. 보고 싶은 책들도 제한 없이 찾게 된다. 동화도 보게 되고 만화도 본다. 다양한 표현의 방식을 보는 내내 즐겁다. 

특정 존재가 되고자 생각했을 때 탐독했던 성공학 관련 책들, 천편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개인의 삶을 규격화해 두었던 자기 계발 서적에 매몰되지 않아도 된다. 수필과 시집과 소설을 속도에 구애받지 않고 아주 천천히 읽어나갈 수 있다. 의미를 생각하고 스스로 정리하는 마음의 공간이 조금씩 넓어진다. 물건을 정리하며 생겨나는 물리적 공간에 비할바가 아니다. 생각의 그릇 또한 커진다.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를 제한 없이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자라난다. 결국 이 또한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는 것과 다름 아닌데, 존재에 대한 열망이 강했을 때와는 접근 방법이 매우 다르다. 단기속성 과외만 받던 학생이 수만 권의 장서가 가득한 도서관에서 진정한 공부를 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방법을 몰라도 책 속에 그것이 있음은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잡다한 제한들이 사라지니 마음이 평화롭다.



짧아도 깊이 있는 글을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