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쉴 때마다 이런 것인가.
잠깐의 휴식도 쉽게 할 수 없는 상태가 일주일이 넘아가고 있다. 두 아이가 어렸을 때도 독감 주사 없이 잘 나던 겨울도, 지레 겁을 먹고 독일산이라는 '좋은' 독감 주사를 맞은 지가 채 일주일이 되기 전에 코감기, 몸살감기, 목감기가 차례로 나를 덮쳤다. 이 와중에 신기한 건 발열증세가 전무하다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미친 듯이 아프다는 것이 두 번째 놀라운 점이었다.
딸아이가 B형 독감 확진을 받고 끙끙 앓고 있을 때 그렇게나 아플까, 했던 내가 크게 한방 맞았다.
그런 나를 옆에 두고 아내가 말했다.
오빤, 일을 쉬면 아프네
그랬다. 쉬면 아팠다.
그렇게 쉼을 원하던 내가, 이제라도 안 쉬면 나가떨어질 것 같았던 내가, 쉬기 시작함과 동시에 컨디션이 저하되고 저질 체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놈의 체력은 술 마실 때만 건재했지 평소엔 무용지물이구나 싶었다. 이유가 뭘까.
뼛속까지 노동자 근성으로 가득해서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기엔 너무 늦은 것일까.
나를 찾고 가족과 어울리는 삶을 원했을 뿐인데, 보이지 않는 손이 일터로 나를 끄집어 당기는 기분이다. 아니면, 내면의 불안함이 '통증'이라는 외부 신호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겠고. 뭐가 됐든, 나는 지금 몹시 아프다. 나름 도망칠 구석을 마련해 둔 퇴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앞만 보면서 갈 때는 어지간히 쉬고 싶어 했는데 이제 쉬려 하니 계속 가라고 하는 것만 같은 상황들로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나라도 어지럽고 나의 속도 시끄럽고, 내면의 아픔이 외면의 결과로 드러난다. 일을 쉬어서 아프다기보다 그간 복잡했던 마음들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꽤 큰 비중으로 나를 누르던 상황들이 쌓이고 쌓이다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으니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농익은 고름처럼.
쉴 때 제대로 쉬기 위해선 그간의 나의 마음 또한 잘 살펴보고 다스리는 것이 유익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