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한 장의 앨범이 나를 흔들었다.
게다가 신해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이들은 모두 연대생이었다.
좋은 음악만큼 그들의 출신 또한 돋보였다. 그럴 시기였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방송반 활동을 하고 있었고, 점심시간 방송에 매우 자주 이 앨범을 틀었다. 아마 당시 많은 학교가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9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하나하나가 특별했다. 더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대화의 내용들을 녹음한다는 것은 매우 신선했다. 내게는 이런 요소들이 재미를 주기도 했고, 공부하다 전람회의 노래를 듣고 한번 웃고 다시 또 책을 보는 일상을 반복했다. 무엇보다 나의 삶에 큰 변화를 주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이 시점이었는데, 전람회의 앨범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연대생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마 내 또래의 적지 않은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당시 내가 빠져있던 뮤지션은 극히 제한적이었는데 이승환, 신해철이 다였고 이들 모두 당시의 우리 부모들이 보기에 모두 '좋은 머리'를 가진 이들이었다. 여기에 전람회의 등장으로 잘 놀기 위해서는 좋은 학교를 가는 것이 꽤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이때의 결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운 좋게 연대에 합격했다.
시간이 흐르며 당시 듣던 노래를 예전만큼 듣지는 못했다. 팍팍한 삶을 이어갈수록 예술을 가까이했어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그때의 감정과 감성을 꾸준히 유지했더라면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마흔다섯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난 여느 부모의 기대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직장을 택했고 그 삶을 17년째 유지해 왔다. 열네 살 그 시절 워크맨을 손에 들고 이어폰을 꽂고 학원에 가던 그 모습은 삼십 년이 더 지난 지금, 핸드폰을 들고 이어폰을 꽂고 회사에 출근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1집을 낸 이 선배들은 중년이 되었고 오늘 새벽 기사를 통해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바로 노트북을 가져와 거실에서 이어폰을 꽂고 전람회 1집을 한 곡 한 곡 들었다.
그래, 이때 이들의 대화를 녹음했던 더빙은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고 추켜세우고 싶다. 이렇게라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은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기에. 어쩌면 떠난 이의 목소리를 이렇게나 가까이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이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1997년, 3집 <졸업>을 끝으로 따뜻했던 듀엣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어려웠지만 이렇게라도 무한히 빠져들 수 있는 음악적 기록은 여전히 내 삶의 별이다.
90년대를 지나 밀레니엄으로 넘어오며, 또한 이제 그들의 나이를 따라가는 지금까지도 내 감성과 감정을 뒤흔들었던 전람회를 기억하고 그 안에서 정겨운 기록을 남겨준, 떠난 이를 추억한다.
아픔 없이 평안히 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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