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되어가고 있고, 2-3년 안에는 IPO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때까지 절대적으로 일에 몰입하고 주 7일 일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보상의 조건 가운데 현금대신 스톡옵션의 비중을 높였던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핵심이었다. 그렇게 난, 내일을 위해 달렸다. 오늘 중요했던 일들은 대게 미래의 기대감 앞에서는 당위성 있는 핑계가 되었고 충분히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 믿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고 상황은 좋지 않았다. 환경적인 문제도 있었고 사람에 대한 이슈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고난의 시기는 어느 누구에게나, 어떤 조직에서나 있을 수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 없이 장기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뀔 마음이 없는 조직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도 그 시스템을 잘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또한 협업의 빈도가 높은 조직에서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곳곳에서 끊어져 튕기는 현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나의 선택은 도박과 다름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래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현상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살펴본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사기업에서 일할 마음이 없던 내가 은행원이 되었고, 그것도 10년 가까이를 재직했다. 또한 이 온실 같은 조직을 벗어날 거란 생각 또한 한적 없던 내가 퇴사를 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의 흐름 가운데 철저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가끔은 무모할 정도로 직감에 따르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외벌이 가장이라는 책무보다 나 자신을 보았다. 적당히 타협해 가며 사는 삶이야말로 가족을 위해 끊어내야 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나쁘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다. 연봉이 330% 넘게 인상되었고, 청약당첨으로 자가 세대주가 되었다. 자산이 늘었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나의 내일을 알 수는 없지만, 늘 그러했듯, 난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고 나쁘지 않을 것이다'는 믿음이 쌓여갔다. 철저한 계획이 무용한 것은 아니나, 늘 그 계획대로의 삶이 이어지지 않았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좋은 기회는 늘 주위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또한 근거 없는 직감이다. 억지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닌, 그렇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과 확신이 있다. 그 과정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할 모험도 하게 될 것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할 것이다. 조금씩 빠르게 방전되었던 나의 체력을 회복하고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한참을 머무른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다. 내게는 선택권이 있다. 누구에 의해서든 대체될 수 없는 주도권을 갖고 있고 무엇을 결정하든, 오로지 내 기준에 의해 내가 직접 판단한다. 내게 주어진 가장 큰 가치이자 선물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어주고 얻은 것이 애초에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권한이었다니.
이제 난 더 이상,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오늘을 담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