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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認定)의 발견

사실 그땐, 인정하지 못했다

by Johnstory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의하지도 않는다.



격렬하다는 말이 당연시되는 스타트업에서 수년간 일해온 난 그런 류의 조직과 결코 맞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문화가 성과에 중심이 되며 업무수칙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직에 재직하기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또 그렇게 새로 합류한 이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내 괴로움의 근원이 여기에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이든 올바른 원칙대로' 준수하며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특히 업무와 관련된, 그 업무가 사람과 상대와 관련된 문제라면 이런 나의 기준에 더더욱 예민해질 수 밖에 없다. 변화와 적응의 속도가 빨라야만 생존이 가능한 정글과 같은 곳에서 승자가 된 이들의 눈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일 수 있겠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충분히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이라는 것에도 이성적이고 보편타당한 전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전제가 있다면 저 말 자체가 모순이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는데 무슨 조건이 붙는단 말인가.



무자비함에 조건 따위는 없다. 스스로 행동하며 이것이 옳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거나 올바른 곳에 이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성취에 압살되기 이전에 찾아내야 한다. 믿는 대로 될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동의하기 어려운 조직의 문화적 압박으로 괴로운 상황이라면 나와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찜찜하고 불편한 성공 대신, 나다운 떳떳한 실패의 과정을 경험하는 편이 자신을 위해 이롭다.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정도를 걷는다고 실패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성공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이들은 그들만의 우주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믿음은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고 원칙이 되어준다. 대척점에 있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 저마다의 우주에서 살아가고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가며 살고있다. 우주의 옳고 그름은 상호 비교가 아닌 자신의 우주 자체, 그 내면의 솔직함을 얼마나 따라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과 그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탑을 쌓아가면 된다.


성장과 성공의 방법 또한 인생이라는 산에 오르는 길처럼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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