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맥어웬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 곰팡이와 전염병
2020년 연말은 코로나19에 더해 AI까지 난리였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아니다. 겨울철에 더 흔한 AI, 조류독감(Avian influenza)이다. 이 조류는 바다의 흐름이 아니라 새(Birds)다. 코로나19에 묻혔지만 겨울마다 한국을 괴롭히는 중요한 이슈다.
조류독감은 철새, 닭, 오리 등 조류에 의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사람에게도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새는 땅에 발붙인 포유류와 달리, 3차원 공간을 자유자재로 점하고 이동거리도 비할 수 없이 길다. 이 때문에 새들은 영화나 소설에서 종종 공포의 대상, 질병의 매개체로 이용된다.
1939년 브라질. 시골 농부들이 따르는 금언이 있다.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여기서 소용돌이란 추수 후 남아있는 옥수숫대에 발생하는 곰팡이다. 농부들은 이 생물체에 혼령이 깃들었다고 믿는다. 접한 사람은 환각, 광기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일본인들이 이 곰팡이에 관심을 갖는다.
1946년 종전 후 태평양. 미국군이 조난된 일본 잠수함을 발견한다. 승무원들은 집단 할복한 상태다. 이를 발견한 미국군들도 광기, 자해, 폭력 증상을 보인다. 생물학자인 리암 코너는 일본 731부대에서 우즈마키를 개발했음을 알게 된다. 일본어로 소용돌이를 의미하는 우즈마키(うずまき)는 무서운 감염력, 파괴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생물무기다. 하필이면 기러기떼가 시체로 가득한 군함 위를 떠돈다. 철새들이 포자를 싣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건 시간 문제다. 방법은 하나, 배를 폭파시키는 것뿐이다.
64년 후 미국. 노벨상 수상자로 명성을 떨치던 분자생물학자 리암 코너가 투신한 시체로 발견된다. 생물학자인 손녀 매기는 수수께끼 같은 리암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리암의 동료 교수인 공학자 제이크와 함께 사건을 파헤친다. 소멸된 줄 알았던 우즈마키의 부활이 드러난다.
Fusarium spiralis / Fusarium spirale
물리학 교수인 폴 맥어웬이 쓴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에 등장하는 균류 생물무기, 우즈마키의 학명이다. 라틴어로 빙빙 돌아가는 물체의 축을 뜻하는fusus와 소용돌이를 의미하는 spiralis의 조합이다. 곰팡이의 모양을 보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균류(균계, Fungi)란 효모, 버섯, 곰팡이 등이 포함된 계에 속하는 생물로 팡이, 진균이라고도 한다. 바이러스, 박테리아(세균)과는 특성이 다르다. 무좀, 질칸디다 등이 균류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춥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감염되는 바이러스와 달리 일반적으로 따뜻하고 습한 곳에서 잘 증식한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를 흔히 미생물(Microorganism)로 통칭하지만,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형태다. 다른 유기체의 살아있는 세포가 있어야 증식할 수 있다.
소설에서 우즈마키를 전 세계에 퍼트리기 위해 동원되는 매개체는 철새다. 수천-수만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이 장거리 배달부들은 소화관에 곰팡이를 싣고 전 세계로 나른다. 새는 직장이 짧고 똥오줌이 섞인 배설물을 바로바로 내보내니 하늘에서 병원체를 흩뿌리는 셈이다. 철새들의 감탄스런 이동경로를 보면 순식간에 판데믹이 벌어질 것이다.
환각, 발작, 폭력성의 원인은 우즈마키가 만들어내는 LSA (lysergic acid)란 성분이다. (실제 균류인 맥각(Ergot)에서 추출되며 환각제인 LSD의 원료이기도 하다.) 일본은 브라질에서 수집한 균류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치명적인 생물무기로 개조했다. 여기서 의문! 우즈마키가 적군, 아군을 가리면서 공격하지는 않는데, 일본군에도 타격이 있지 않을까?
답은 페니실린이다. 항생제의 조상님격인 페니실린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서 널리 사용되었지만 일본군은 아니었다. 이 항생제는 많은 사람을 구한 영웅이지만 장내에 서식하는 유익한 박테리아도 상당수 죽인다. 체내에 있는 미생물들은 외부 병원체를 물리치는 역할도 한다. 항생제 투여로 유익균이 줄어들면 우즈마키가 인체를 점령한다.
실제로 항생제를 투여한 사람은 칸디다증 같은 곰팡이 감염증의 위험이 증가한다. 생물체(Organism)란 복잡하고 오묘한 조직(Organization)이다. 사회 조직처럼 일부가 변하면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설에서 우즈마키가 부활한 21세기는 항생제의 천국이므로 우즈마키는 한층 더 치명적이다. 백신을 빠르게 개발하긴 하지만 감염 초기의 급속한 확산과 피해는 막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물론 리암 코너가 그냥 죽지는 않았다. 누구나 예상하듯 방법은 있다. 우즈마키의 치료제는 이 곰팡이를 무력화시키는 장내 박테리아를 이용해 개발된다. 박테리아를 퇴치하는 페니실린이 푸른곰팡이에서 발견된 걸 생각하면 흥미로운 설정이다.
소설은 헐리웃 영화처럼 빠르게 전개된다. 생물학적 개연성도 탄탄하지만, 작가가 나노공학 전문가이다 보니 초소형 로봇인 마이크로 크롤러의 묘사가 매우 재미있다. 마이클 베이가 제작하면 크롤러를 전면에 등장시켜 볼거리 위주의 화려한 영화로 만들 것 같다. 일본과 중국을 대하는 원작의 태도는 전형적인 서구 백인의 시각이라고 욕먹기 좋으니, 영화화하면서 적절히 순화할 테고.
우즈마키처럼 치명적이면 숙주가 빠르게 소멸하기에 오래 가기 어렵다. 코로나19는 치사율이 높긴 하지만(한국에서 2% 미만, 이탈리아에서 14% 이상) 무증상자도 많고 젊은 숙주는 비교적 많이 ‘살려’두니 향후 몇 년간 인간의 지긋지긋한 동반자로 남을 것이다. 전 인류에게 거대한 쉼표를 찍어 준 코로나 시대가 만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니!
코로나19만큼 궁금하고 보다 오래된 그것. 조류독감은 2003년 국내에 처음 도입됐고 최근 10년간 살처분된 닭, 오리의 수는 약 7,500만 마리에 이른다. 중국에선 조류에 백신 투여도 하지만 국내 백신 개발, 도입은 미지수다. 코로나19처럼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변이가 빨라 대응이 어렵고, 무엇보다 비용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하고 항체가 생기기까지 약 한 달 이상 걸리는데, 생육기간이 짧고 빨리 출하해야 하는 사육 조류에게 접종하는 건 경제적이지 않은 거다. 현실상 ‘예방적 살처분’이 백신 대신인 셈이다.
하긴 사람 대상 백신에도 적용되는 경제적 논리가 동물에게는 오죽하겠는가. 디스토피아 SF의 세계라면 인간도 예방적 살처분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2020년 겨울은 조류에게도 사람에게도 길고 어두웠다. 보이지는 않지만 몸 안팎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괴물들의 존재를 새삼 실감하는 계절이었다.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명백하다. 병원체라는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참고문헌
Mayoclinic. Yeast infection (vaginal). https://www.mayoclinic.org/diseases-conditions/yeast-infection/symptoms-causes/syc-20378999 Accessed 30 Dec 2020.
Mattta S, et al. Indian J Tuberc. 2020 Dec; 67(4): S167–S172.
한겨레. 10년 동안 7500만마리 떼죽음. 예방할 대안은 없나. 2020. 12. 30.
동아사이언스. 조류독감은 백신으로 예방할 순 없나요? 2016.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