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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페로 Oct 30. 2020

어떤 유전자를 편집할까?

김초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탈모!”

유전자 편집이 상용화되면 후손에게 어떤 특성을 제거하게 할까?


온갖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던 와중에 친구 녀석은 탈모를 외쳤다. 그는 30대에 들어서자마자  강려크한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머리 꼭대기부터 받았고, 지금까지 많은 비용과 노력을 머리카락에 쏟았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이런 고민을 물려받았을까 두렵다고 한다. 영특하게 잘 돌아가는 두뇌와 다들 인정하는 원만한 사회성을 가진 그에게도 탈모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탈모가 격세유전이다?  낭설이다. 유전적 소인이 있을 경우 바로 아래 세대에 나타날 수도 있고 몇 세대에 걸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격세유전이란 개념 자체가 정확하지 않고 과학적으로도 사라지는 용어다.


현재 태아나 배아 대상이 아닌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유전자 검사 항목에는 각종 질환, 비만, 식습관에 더해 ‘남성형 탈모’가 포함된다. 비만이나 식습관이야 건강과 직접 관련되지만, 탈모는 제거해야 하는 문제일까? 탈모 자체가 어떤 기능적 불편이나 신체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질환으로 인식된다.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유전자 검사 항목에 포함되긴 했지만, 탈모와 연관된 유전자는 한 종류가 아니고 아직 다 밝혀지지도 않았다. 관련 유전자가 있다고 100% 탈모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의약품으로 허가된 탈모 치료제도 여러 종 있지만  건강보험 급여 적용 대상은 아니다.  딱히 생명이나 건강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탈모 치료법이 계속 나오고 친구 녀석이 피같은 돈과 시간을 쏟는 걸 보면 삶의 질을 해치는 중요한 문제인가 보다. 외모, 또는 성 선택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셈이다.


렉스 루터가 수퍼맨을 미워한 것도 머리카락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김초엽 작가의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등장하는 지구는 유전자 편집이 일반화된 우생학의 천국이다. 부모의 빈곤 때문에 유전자 편집을 받지 못하거나 저렴한 시술을 받은 이들은 얼굴에 커다란 흉터와 같은 결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기술의 수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다.


그 정도 발전된 세상이라면 얼굴에 남는 흉터 정도는 제거하거나 은폐할 다른 방법이 개발되지 않나 싶지만, 이 소설은 엄밀한 과학적 설정을 중시하는 하드 SF는 아니다. 흉터는 일종의 낙인, 배제의 상징이다. 자본으로부터의 배제, 기술로부터의 배제, 사회적 관계(또는 성 선택)로부터의 배제다. 소설에는 흉터가 있는 여성이 남성들로부터 놀림받고 조롱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만과 비슷한 면이 있다. 비만은 매력을 해치는 요소로 인식되고 저소득층에서 비만 인구가 많다. 단순히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과 자기 관리 부재의 상징으로 치환된다.

    

흥미롭게도 기술은 결함을 딛고 발전한다. 소설에서 우생학의 지구를 만든 이는 천재 바이오해커 릴리다. 그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발전시켜 널리 퍼뜨리고 대중화에 기여했다. 릴리의 가난한 부모는 태아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그는 결함을 가지고 태어났다. 컴플렉스가 그녀를 채찍질해 배아의 유전자를 의뢰받은 대로 디자인하는 달인이 되었고, 자신의 기술로 인해 부와 명성을 축적했다. 반면 이렇게 일반화된 기술을 이용할 자본이 없는 자들에서 태어난 이들은 더욱더 열등해졌다.


뛰어난 릴리지만 그의 아이 또한 결함(흉터)을 가졌다. 태어난다면 역설적으로 엄마가 만든 세상에서 주류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결함과 기술의 물고 물리는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 재미있는 설정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이 소설집에 수록되었다


현실에서도 기술, 특히 생물학이나 의약학 분야의 발전은 결함에 기반을 둔다. 영화 ‘가타카’처럼 태어날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용도가 아니더라도,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이미 각종 식품이나 의약품 개발에 이용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탈모 치료제 연구 결과도 보도되었다. 호르몬성 탈모의 주 원인은 5-알파환원효소(5-alpha reductase inhibitor)다. 이 효소가 남성 호르몬을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ihydrotestosterone)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두피 모낭세포 성장을 억제해서 머리카락이 정상보다 빨리 빠진다. 이 환원효소는 머리에 많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이 효소가 많이 발현되면 탈모가 생긴다.


개발 중인 기술은 나노 전달체에 넣은 유전자 가위 물질을 피부에 바르고 초음파를 적용해서 탈모의 원인이 되는 환원효소 유전자를 삭제하는 방법이다. 물론 언제 상용화될지 알 수 없지만, 그만큼 기술은 빠르게 달려나간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탈모 치료, 동물실험까지 이루어졌다.


탈모가 결함으로, 질환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런  진보도 이루어진다. 21세기 중후반이 되면 선천적으로 관련 유전자를 제거하든, 후천적으로 치료하든, 이런저런 방법으로 탈모를 없애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더 컴플렉스의 집합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탈모는 치료나 제거가 필요한 결함일까?  아직도 의문스럽다.  SF 소설에는 종종 동성애가 ‘대세’인 설정이 등장한다. 이성애가 배척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다. 환경적, 기술적 요인으로 민머리가 선호되는 세상이 오면 숱많은 머리카락이 얼굴의 흉터처럼 인식되지 않을까.


현재 식약처 소비자 대상 직접 유전자검사(DTC 유전자검사) 항목. 치아질환은 없다.


딱히 유전자를 남길 것 같진 않지만, 굳이 후손의 유전자를 편집한다면 항목에 ‘충치’ 관련 유전자를 꼭 넣고 싶다. 치아질환도 유전적 소인이 있으니 관련 유전자 몇 개 조정해서 확률을 줄일 수 있다면 그의 삶의 질은 선조와는 급이 다를 것이다. 충치야말로 탈모보다 실제적이고 실체적인 결핍이 아닐까. 입에 아이폰 전 기종을 물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술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항목이다.




참고문헌

보건복지부.  DTC 유전자검사 가이드라인. 2020.03 

Ryu JY, et al. Biomaterials. 2020 Feb;232:119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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