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 글 ‘기억을 더듬다(4)-수학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수학 귀신>’에서 언급하였듯이, 나는 학창 시절에 수학을 잘하고 좋아했다. 반면, 영어는 잘하지 못했다. 나는 극 I 성향을 지녀서 모국어로도 사람들과 대화할 때 종종 쉽지 않다. 영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이고 우선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왜 영어를 잘하지 못하였는지 충분히 이해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음... 역사는...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던 과목이었던 것 같다. 분명한 건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맹꽁이 서당>이라는 역사 만화를 어릴 때 무척 재미있게 봤고,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북돋아 주는 데에 한몫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의 역사 공부를 계속 되짚어 보면,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근현대사를 선택했고, 10년 전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취득했다. 때때로 박물관 전시도 보러 갔다. 그리고 이번에 <맹꽁이 서당 1>을 다시 보며 역사에 대해 생각할 만한 기회가 생겼다. 드문드문이기는 하나 이렇게 역사 공부는 내 인생과 같이 가는 측면이 있는 듯하다.
<맹꽁이 서당>은 총 15권으로 되어 있다. 1권부터 10권까지는 조선 시대에 관하며, 11권부터 15권까지는 고려 시대에 관한다. 1권이 조선 시대 태조부터 예종까지 다룬다고는 하나, 정확히는 망해가는 고려 말의 왕들 또한 가볍게 다루어졌다.
<맹꽁이 서당 1>의 초반에 내가 주목한 점은 태조가 되기 전의 이성계에 대한 야사가 굉장히 많이 거론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야사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하나가 있었다. 활을 먼저 쏜 후 말을 달려 화살을 앞질러 가야 한다는 대회에 이성계도 참여한다. 이성계는 활을 쏘는 동시에 말 허리를 박차고 내달린다. 하지만, 말보다 화살이 먼저 와 꽂혀 있었다. 화가 난 이성계는 바로 말의 목을 벤다. 그런데 말의 목을 베자마자 화살이 날아와서 꽂힌다. 꽂혀 있던 화살은 다른 사람이 쏜 것이었다. 이 하나의 야사를 통해 그의 상반된 면모를 알 수 있다. 무예가 출중함과 급한 성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이 야사가 전해내려오는 데에는 태조 이성계를 여러 방면에서 보려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 외에 관심이 간 사람은 태종 이방원이다. 선대왕 중 왕명과 실명이 함께 널리 알려진 경우는 많지 않다. 그 많지 않은 경우 중 한 명이 태종 이방원이다. 태종 이방원은 그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그러니까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기 한참 전에) 큰일 하나를 치렀다. 그것을 이유로 실명도 널리 알려진 것 같다. 이방원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와 시 읊기를 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하여가를 지었고, 정몽주는 단심가를 통해 거절의 뜻을 전달했다. 이걸 유머러스한 관점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랩배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전에 하여가와 단심가를 문학적 가치로 바라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여가는 비유를 사용하였으나 단심가는 자신의 뜻만을 노래하였기에, 하여가가 단심가보다 문학적 가치가 높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글에서 지금까지는 <맹꽁이 서당 1>을 역사의 측면에서만 보았는데,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과 학동들의 이야기도 당연히 흥미로웠다. ‘유비무환(有備無患)’(47p), 즉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음.’이라는 뜻의 오랜만에 본 고사성어도 있었고, ‘공자왈 획죄어천(獲罪於天)이 무소도야(無所禱也)’(127~128p), 즉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음.’이라는 뜻의 새로 알게 된 공자님 말씀도 있었다. 윤승운 작가님의 한문에 대한 사랑이 엿보였다.
그리고 ‘펴내는 글’을 보면 윤승운 작가님이 <맹꽁이 서당>을 펴낸 의도를 알 수 있는데 “나는 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역사가 자랑스럽든 부끄럽든 그것을 거울삼아 우리 어린이들의 삶이 진정 밝고 건전하게 펼쳐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정몽주,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문신 정몽주와 함께 고려 최후의 충신으로 꼽히는 무신 최영, 사육신, 생육신을 거울로 삼고 싶다. 뜻을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하는 이 시대에 그들의 절개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윤승운 작가님의 이 의도가 1982년 가을부터 연재된 <맹꽁이 서당>이 오늘날에도 여러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