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겨울 n.1 쌀쌀함을 이겨나가는 법

# 겨울 (2019)

by 전구슬

Chapter 2 # 겨울 - n.0 따뜻하길 바라요. 이번 겨울도.

쌀쌀한 겨울이면, 두껍고 포근한 이불속에 폭 쌓여서 생각으로부터 잠들어버리는 것도 좋다.

Chapter 2 # 겨울 - n.1 쌀쌀한 두려움을 이겨 나가는 법.

겨울이 다가옴과 동시에 시험을 준비하는 나와 하쿠는 자취생활을 완전히 접고, 본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얼추 2학기도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책과 공부를 병행하며 아주 촘촘한 생활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그해 졸업시험은 대단히도 어려웠다. 하쿠랑 지내느라,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공부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나도 어찌어찌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쿠랑 마냥 하하호호 웃으며 놀던 나에게 현실에 대한 자각을 시켜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쿠랑 노닥거리는 게 너무 달콤해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할 일이 있다는 걸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살아남은 게 용하다. 두 번 다시는 없을 것 같은 행운이다. 그렇게 졸업시험은 어떻게 통과하게 되었고 남은 건 수의사 국가고시(수의사 시험)로, 긴 대학 생활 끝에 단 하나의 시험이 남아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 엄마가 사주신 패딩
자취방에서의 하쿠. 학교에 가있는 동안은 베란다에서 지냈어서 겨울이 점점 다가오자 추울까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더 추워지기 전에 본집으로 갈 수 있었다.
졸업 시험이 끝났으니,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자격증 시험이 다가오면서 하쿠의 생활도 점점 변화하게 되었다. 하쿠에게는 결론적으로 행복하고 좋은 생활이었다. 부모님께서도 물심양면으로 우리를 도와주셨다. 시험 준비하느라 하쿠에게 큰 관심을 쏟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하쿠와 잘 놀아주셨고, 잘 보살펴 주셨다. 내가 하쿠 보호자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신경 쓰지 못했던 세심한 부분(털 빗기라 던가, 하쿠와 놀아주는 방법이라던가)에서 엄마 아빠는 정말 훌륭하게 보살펴 주셨다. 연륜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리고 하쿠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시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면서 이러한 부모님이 더욱 감사해졌다.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버거웠을 생활이었음이 분명하다. 덕분에 하쿠는 더욱 밝아지고 가족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에 대해 행복해 보였다. 작년에는 똥 흘림을 의식하면서 남들을 경계하고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겁쟁이가 이제는 엄마 아빠에게 가서 장난도 치고 같이 낮잠 자자고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뭉클하기도 했다. 그리고 점점 더 간헐적으로 똥을 흘리는(예전처럼 설사 똥도 아니고 약간의 잔변. 동글동글한) 횟수도 거의 0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날씨도 춥고, 때때로 시험이 불안한 나였지만 그래도 하쿠에 관련해서 만큼은 점점 안도감을 쌓을 수 있었다. 바깥은 추워도 우리의 집은 항상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때론 아빠가 혼내도 말 안듣고 반항도 한다. 그만큼 엄마 아빠가 편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쿠는 기분 좋을 때 뒤집기 놀이를 한다.
장발장 못지 않은 빵도둑!
공부하는 누나 뒤에서 쿨쿨 자는 하쿠. 무럭무럭 크느라 동굴집이 작아졌다.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베개를 베고 잔다
하쿠가 좋아하는(했던...지금은 터져 버리게 됐지만 ㅠㅠ) 시바견 인형.
김장하는 날, 혹여나 털이 날릴까 쫓겨났지만 다들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지 창밖에서 기다리는 하쿠.

한 번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처음으로, 하쿠와 애견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시험 준비하느라 많이 못 놀아 준 것 같기도 하고, 하쿠가 많이 건강해져서 여러 친구들이 있는 곳에 가도 잘 지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획한 이벤트였다. 처음엔 시바견의 특이성과 하쿠 특유의 귀여운 얼굴로 여기저기 이쁨을 많이 받으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주목을 받고, 여러 강아지들이 우르르 관심을 표하는 것에 긴장한 탓인지 설사 똥은 아니지만 무른 변을 뿌직 하고 싸버렸다. 보통 소형견들이 주를 이루는 애견카페에서 9kg짜리의 배변장애를 가진 스트레스받은 시바견이 싸는 똥은 스케일이 다른 놀라움이었던 것 같다. 양도 양이거니와 냄새가 심해서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강아지들도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짜증이 나서 낑낑거리는 하쿠를 안아 애써 달래고, 더러워진 엉덩이를 씻기고, 말렸다. 다시 애견카페용 기저귀를 채워 다시 운동장으로 보냈으나, 쉽사리 처음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시무룩했다. 개들은 생각(또는 감정)이 없다는 것은 개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실금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우울해진 하쿠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조금 안아주다가 하쿠를 달래서 다른 친구들과 다시 놀게 하였다. 다행히 착한 강아지 친구들은 이내 하쿠곁으로 모여들었고, 나머지 시간 동안은 하쿠는 잘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선 세상이 끝나도 모를 것처럼 잠을 쿨쿨 자는 것을 보니,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 그다음 날에는 켄넬 코프라는 강아지 감기도 걸렸었다.(그리고 하쿠는 이 일을 계기로 백신 접종 또한 1차부터 완벽히 다 맞추게 되었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강아지나 사람이나 무의식 중에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신 깊은 곳에서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우리는 변하는 면모로 그것들을 이겨내 가야 한다. 그래서 하쿠가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하쿠가 아프거나 간혹 실금을 보일 때에도 더욱 사랑해주고 괜찮다고 위로해주기로 했다. 힘들 때일수록 서로를 더욱 도와야 한다. 하쿠는 가끔 실수 좀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언제든지 사랑하는, 여전히 대견한, 착한, 하쿠이니까.

애견카페에서의 즐거운 한 때.
사건 이후 풀 죽은 채로 안겨있는 하쿠
애견카페 갔다 온 날. 지쳐서 쿨쿨 자는 하쿠.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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