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겨울 - n.2 겨울도 지나가기 마련.
그리고 혹시라도 떨어질까 걱정돼서 때론 잠도 설치게 하던 국가고시가 다가왔다. 수의사 국가고시는 해마다 600여 명 정도의 예비 수의사들이 한 장소에 모여 시험을 친다. 때문에 일주일 정도 전에는 그 지역 근처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며 마무리 준비를 했는데, 부득이하게 하쿠와 떨어져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씩 여행을 가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집을 떠나게 되어, 하쿠랑 하루 이틀 정도는 떨어져 지내게 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제 하쿠와도 ‘하쿠 사랑해!’, ‘하쿠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돼!’ 또는 ‘금방 돌아올게 기다려!’와 같이 간단한 감정을 전달하는 의사소통은 가능해졌지만, ‘이번에 가면 오래 동안 떨어져 있게 될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야 돼’와 같이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의 약속’은 도무지 이해시킬 방법이 없었다. 사람 간에는 간단한 커뮤니케이션 만으로도 해결되는 문장이었지만, 하쿠에게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내용이었다. 그런 탓에, 평소에도 하쿠는 집과 자취방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혹여라도 나와 떨어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여행용 캐리어만 꺼내면 캐리어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신도 잊지 말고 꼭 데려가라는 듯, 그 옆에 딱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따라서, 하쿠의 흔들리는 눈빛과 불안한 표정에 대한 기억이 더욱 나를 걱정시켰다. ‘나를 기다리다가 우울증에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지?’ ‘내가 없는 동안 스트레스로 배변장애가 다시 재발해서 심각한 정도로까지 이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의학과 6년 공부의 방점에 있는 자격증 시험. 이 관문은 기필코 뚫어야 수의사로 나아갈 수 있었다. 더불어 필연적으로 귀엽지만 안쓰러운 이 시바견 또한 나 없이,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법도 배워야 했다. 그럼에도, 혹여나 스트레스로 인해 하쿠의 배변장애가 심해지거나 돌발상황이 생길까 하던 불안한 상상은 쉽사리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어 걱정에 걱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떠나는 날 꼭 이 느낌을 기억이라도 하라는 듯, 하쿠를 할 수 있는 한 힘껏 안아주었다. 인사도 몇 번이나 하고서야 시험을 치러 출발했다. 막상 시험공부를 하러 올라가니 발등에 불이 붙어서, 저녁시간 잠깐, 가족과 전화 통화하는 몇 분을 제외하면 걱정할 겨를도 없었다. 하쿠도 처음에는 나와 영상통화를 하는 동안 내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어리둥절해하고, 첫 며칠 밤동안은 도무지 오지 않는 나를 찾느라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끙끙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적응되어서 삼사일 후에는 엄마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덕분에 나도 시험 날짜까지 집중할 수 있었고, 룸메이트와 함께 예상문제와 씨름하며 나름대로 고분군투 하던 그 시간들이 힘들었지만 좋았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내가 공부하던 방의 창가에서는 고개를 들면 한강이 보였다. 새벽부터 줄지어 출근하는 차들의 행렬과 저녁부터 또 다른 새벽까지 다시 이어지던 퇴근 차들의 기차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하나하나 모두 사부작사부작 열심히 움직이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그저 하나의 불빛으로 이어진 긴 줄 같았다. 대단히 정적으로 느껴졌던 그 풍경은 매일 일정한 시간만 되면 다시 똑같이 이어졌다. 반복적인 그 풍경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목적지 다른 하나하나의 차들이 가질 사연들처럼, 우리도 내면은 저마다 복잡다단하지만, 크게 보면 모두 이렇게 줄지어 질서 정연하게, 또 충실히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각자의 속도가, 때로는 확신할 수 없는 목적지 자체가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할 지라도 이렇게 걸어 나가기만 한다면 어디에던가 도착해 있겠지.
어떤 날은 <짱구는 못 말려>의 주제가처럼 ‘천방지축 얼렁뚱땅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하쿠와의 2년도 꿈같이 느껴졌다. 항문 없는 배변장애 시바견과 함께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그리고 갖은 고생을 하는 와중에도, 이 시바견이 말끔히 나아서 타박타박 집안을 돌아다니리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때론 힘들고 눈물 콧물 모두 섞인 날들도 있었지만, 크게 보면 예상 밖의 사건들로 웃게 되고,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나날들이었다. 덕분에 나도 마음 안팎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돌아가면 더욱 하쿠와 재밌게, 행복하게 지내야지 다짐하게 되었다.
막상 시험날이 되니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고사장으로 출발해서 오후 늦게까지 시험을 쳤다. 다만 생각보다 어렵고, 도무지 아리송한 문제들에 뒤섞여 머리가 혼란스러웠을 뿐. 시험이 끝나자마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하쿠는 오랫동안 안보였던 내가 원망스러운 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하쿠를 다시 보게 돼서 반가워 죽을 것 같은 나는 '하쿠~~~'하고 돌고래소리를 내면서 달려들었다. 그러자 곧 하쿠도 쭉 뻗은 앞발로 뒤뚱거리는, 신난 시바견 특유의 리드미컬한 발걸음으로 나에게 (마지못해?) 안겨주었다. 다행히 하쿠의 용서는 빨랐다. 역시 쿨한 친구. 며칠 뒤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다행히 합격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와 함께하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로소 다시 얻게 된 소중한 일상이었다. 하쿠의 배변 장애 재활도, 나의 대학 생활도,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했던 여정들이 일단락된 것이다.
하도 양말을 뺏어가서 긴 양말을 신고 효자손으로 교육 중. 개춘기가 왔는지 1도 안 듣고 멍 때리는 게 분명하다.''하~머라는 거야~좀 따 뺏어가지'하는 표정. 양말이 무색ㅠ
엄마가 만들어 주신 망토.
엄마 아빠 식사하시는 식탁 밑으로 들어가서 노는 쿠. 불러도 귀찮은지 오지 않고 고개만 빼꼼히 내어본다. 말 잘 안 듣는 장난꾸러기. 처음 보는 사람이 날 이뻐해 주다니 나도 좋아!! 그런데 왜 가냐쿠?!
가족모임에 참여한 하쿠의 뒤통수. 사뭇 진지하지만 1도 알아듣지 못한다
신나 신나 오늘도 신나!
낮잠 쿨-쿨.
시험 끝난 누나의 문화생활. 장기간 떠나 있어본 탓인지, 이제는 부모님께 걱정 없이, 하쿠를 맡기고 여유를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 아빠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매불망 하쿠.'빨리 와 누나~!!!' 시험도 끝나고, 집에 가면 건강한 하쿠도 있고. 이 시기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Chapter 2. #겨울 – 에필로그. 끝은 새로운 시작.
겨울도 끝나고 또다시 봄이 왔다.
나는 부족한 공부를 채우고 싶어 대학원에 입학했다.
병원 출근 이틀째. 당직서는 날 아침.
갑자기 누나가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고,
엄청 피곤해 보여서인지
잠시 누워 쉬고 있는 누나를 걱정해주는 듯한 하쿠.
이때나 지금이나 누나는 아직 어렵다가도 재밌고,
재미있다가도 어려운 일들의 반복이다.
아침에 학교로 출발하기 전,
잠시 소파에 누운 사이에 냉큼 올라와 앉아서는 저런 눈빛을 보내니
애처롭고 미안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쿠덕에 오늘도 파이팅!
언제나 사랑해.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하쿠는 요즘 하루의 대부분을 퇴직하신 엄마 아빠와 생활하고 있다.
산책도 꾸준히 하고, 밥도 잘 먹고, 놀기도 잘 논다.
사실 하루의 대부분은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늘어지게 자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밤에는 꼭 퇴근하고 녹초가 된 나의 곁에 와서 잠이 든다.
다만, 간헐적으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동반되기도 한다.
하쿠의 경우 배변 실금을 비롯한 배변장애에 대한 PTSD(외상성 스트레스 증후군)가 있기 때문에, 이 순간을 더욱 힘들어한다. 염증성 병변 자체도 문제이지만, 설사를 다시 한다는 것에 하쿠는 매우 과민해지고, 호흡이 가빨라지고, 통증 반응을 극심하게 표현하곤 한다.
따라서 이러한 시기에는 적절한 의학적 처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이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베란다에서 지내거나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하루 이틀이면 차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 빈도도 점차 감소하여, 최근에는 완치에 수렴하고 있다.
식이의 경우에도 극히 제한을 두는 편이다. 소화개선용 사료를 먹으며, 간식으로는 저 알러지성 처방식을 몇 알 받아먹는다. 또한 공복성 구토를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하루 식이량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공급하기도 한다.
배변의 경우 fecal score 4 정도로 정상적인 경도와 색깔을 띠고 있다. 배변량은 하루에 1-2회 정도이며, 산책에 의해 유도되기도 하고, 산책 시간에 맞추어 배변하기도 한다. 운동은 하쿠의 근육량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며, 4번의 산책 중 1회는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그렇게 나름 잘 이겨내고 무탈하게 지내오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