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애엄마 치고는 수줍음이 많다. 넉살 좋게 웃으며 얘기하고 싶은데 뭔가 푼수 같기도 하고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나 자신이 어색하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 있을 땐 처음에 조용하게 있는데 그럼 나를 사람들이 새침데기로 보곤 한다.
그러나 친해져서 말을 하면 누구보다도 친근하고 털털하게 대해서 이미지가 처음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사회나 집단에 따라서 나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 나는 한 없이 소심한 I이고 어디에선 나는 인싸 E다.
예전엔 이런 나의 모습이 이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뭐가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르겠었다. '나는 어떤 성격이에요'라고 심플하게 말하고 싶었고 그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틀을 만든 건 사회일 뿐 나를 거기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길건 짧건 다 내 손가락인 것처럼 두 가지 모습 모두 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니 맘이 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시작이 수줍음인 것은 젊은 날의 열정이 호기처럼 느껴져서 일 거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기도 한다.
용기를 내게 되는 상황은 호기심이 갈 때다. 그게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떤 물체이건 말이다. 사실 웬만한 거에 놀라거나 신기한 느낌을 갖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그런 느낌이 들면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활발한 E로 바뀐다. 수다쟁이 아줌마처럼 말이다.
아줌마들은 거리낌이 없고 연대를 잘한다. 우리 엄마만 봐도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과도 몇 십 분은 떠들면서 얘기할 수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보,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온다. 물론 그게 근거가 있는 이야기 인지는 따져봐야 할 거지만 무언가 새로운 시선과 시각을 배울 수 있는 크나큰 기회처럼 느껴진다.
뻘쭘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럴 때 나는 아직 나는 아줌마 단계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안심을 하기도 하고 좀 더 철면피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다가 오늘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에게 대화를 시도했고 강사 선생님께 질문을 했으며 식당 사장님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 안에는 '아무렴 어때? 아님 말고'의 정신이 깃들여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로 인해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어제와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