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한 새벽 4시 3분. 생생한 꿈을 꾸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뜬다. 요 며칠 알 수 없는 꿈들을 자꾸 꾸는데 꿈속에 나는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을 겪는다. 거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나는 트라우마에서 단 1cm도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괜찮은 척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여행을 가고 다 잊은 척 사람을 만나도 여전히 난 그 사건 속에 파묻혀있는 기분이다.
꿈에서 나는 학생이 되었다가 선생이 되었다가 한다. 결국은 잘하고 싶은데 난관을 만나 고군분투한다. 오늘은 열심히 글을 써야 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시간은 다가오고 글은 써지지 않고 잠깐 간 화장실에서 알 수 없는 물벼락을 맞는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무섭고 사람이 애달프게 그립다. 사랑은 달콤하지만 쓰린 것처럼 사람은 더 깊고 치명적이다. 미움도 질투도 모두 처음 시작은 애정에서 비롯된다. 갈 길을 잃은 따스한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단단해진 겉 표면 속에 여린 숨이 할딱거린다. 꺼내달라고, 나 아직 여기 있다고 말이다.
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용기가 없다. 내 편이 없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싸우는 피 흘리는 장군 느낌이다. 그래서 가능한 멀리,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마음도 끊어지길. 마음이 끊어지면 내 일이 아니기 되길 바라나 보다.
안개 자욱한 호텔방에서 밖을 내다보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는 그래도 신호등 불 빛이라도 아른거렸는데 말이다. 한기가 들어 폭신한 샤워가운을 입는다. 폭 쌓인 느낌이 나쁘지 않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욱했던 24년이 가고 선명한 25년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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