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회사는 능력 순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능력이 모자라도 실수가 있어도 용인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 미세한 차이가 정말로 크다. 대학교 때 행정 및 경영 관련 수업에서 조직론에 대해 배웠던 게 생각이 났다. 내가 속한 곳이 어떤 조직인지 그 성격을 잘 파악해야 했다. 나는 나 편한 대로 조직을 해석했는데 그게 불찰이었던 거 같다.
최근 관리자가 바뀌었다. 으레 그런 것처럼 문서 하나하나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문서를 해놓으면 그 다음날 여지없이 반려를 했다. 풍문으로는 관리자 연수를 가면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조직 사람들 길들이기라고, 권위에 복종하게 하는 방법이다.
여러 번의 반려를 겪으며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급할 게 없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을 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그렇게 안되면 그 담날 하지 뭐.'라는 미루기 정신을 실천했다. 일하다 쉬고 싶으면 쉬었고 차도 마셨고 사람들과 얘기도 했다. 그 일 말고도 할 일은 많았다. 결재받지 않고 일하는 것도 꽤 괜찮았다.
주위를 돌아보니 관리자는 우리 부서뿐만이 아니라 돌아가며 부서를 괴롭혔다. 그리고 어찌나 형식과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만들어진 전통'처럼 모든 걸 새로 만들어 갔다. 도가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뒤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멈춰야 한다고.
하지만 다 함께 부당함에 대해 얘기하자고 성토하기만 했지 누구도 먼저 나서거나 사람들을 모으거나 하지 않았다. 어쩌면 속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이 바빠서, 이 문제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아서, 이 사람이 나랑 생각이 같은지 다른지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뭉치기가 쉽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관리자의 연대는 상당했다. 권력이라는 큰 무기는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당근으로 쓰였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었다. 공정해 보이는 투표도 '무조건 1번'처럼 공작이 가능했다. 목표가 있는 관리자와 목표가 없는 직원들의 싸움은 백전백패였다. 동료는 동료일 뿐, 위로와 공감은 있지만 모든 건 개인플레이였다. 내가 다치면 발끈했고, 옆 사람이 다치면 함께 욕할 뿐이었다.
나와 생각이 같은지 다른지 이 사람이 내 뒤통수를 칠지 아닐지를 끊임없이 예의 주시해야 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놓을 수는 없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든든한 조력자가 될지 모르니 말이다. 연대와 배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시간이 흐르면 그 줄이 단단한지 끊어질지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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