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생활 - 합평 시간

쉽게 망하는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

by 김남희

‘노키즈존’ 언급하는 부분이 좋았어. 근데 약간 흘러가는 느낌이라 설명이 더해져도 좋을 거 같아. “밤에 야식 시키면 죄책감 들어. 몸에 안 좋잖아.”가 맨 앞으로 와도 괜찮을 거 같은데.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에서 설명이 덜하다고 했던 부분 빼놓고는 무난했던 거 같아.

창작 스터디에서 들은 합평들을 정리한다. ‘죄책감을 생각하는 하루’라는 제목의 수필을 조금 일찍 가져갔을 것을. 그러면 피드백받은 걸 반영해서 송고할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나중에(과연 언제?) 다르게 선보일 수 있을 때 참고해야겠다. 또 다른 글을 쓸 때도 의식해야지. 배치랑 설명. 스터디를 할 때 주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관념어 남발하지 않고 이미지로 상황을 보여주기, 탄탄한 플롯, 잘 다듬어진 문장, 신선한 생각,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본 흔적, 현실적이고 다면적인 인물 만들기 등등. 스터디에서 주로 언급되는 좋은 글의 기준을 떠올린다. 모임 속의 우리는 이것에 부합하는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반례가 될만한 것들을 디스하기도 한다. 추상적이고 얄팍한 생각, 유행대로 대충 예쁜 단어로 범벅해서 진부해진 문장들, 개중에서 내가 제일 싫은 건 인간성 결핍. 작가가 성인군자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캐셔가 앉아서 계산하는 꼴도 못 보는 것들이 책 내겠다고 난리 치는 걸 봐야 되나?


(나도 포함되겠지만) 진짜 아무나 글 쓴다고 하는구나. 이 판은 이런 점이 취약하다. 사짜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도 막을 방법이 없다. 논픽션 에세이가 특히 그런데, 본인의 차별, 편견, 폭력적인 행동들을 글의 힘을 빌려서 정당화하려는 놈들이 종종 보인다. 그러니 악질 기업 총수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나온다든가, 그 악질 기업인들의 성공을 ‘분석’하는 책들이 서점에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거겠지. 주변 사람들을 깎아내리지 않으면 조금도 자존감을 못 올리는 애들의 힐링 에세이도.


걔네도 일단 자기들을 그렇게 분칠하고 나면 ‘작가님’ 소리 하나에, 대단한 지식인이자 성공한 인생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믿을 테니까. 현실은 문장조차 비문투성이인데 말이다. 악기도, 노래도, 그림도, 거의 웬만한 종사자들이 일정 수준을 능숙하게 할 수 있고 수용자도 대부분 이걸 아는데 이 판은 (물론 잘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몇몇 애들이 멍청하고 무례하고 서툰 데다 그걸 지적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회화나 음악 같은 것들이 주는 두터운 반복과 분명한 기준이 부럽다고 생각해 본다. 그에 비하면 지금 이렇게 말을 고르는 건 그냥 허공에 매달린 기분. 그 허공에서 뭘 찾고 있나. 인정? 그러니까 사이비 ‘작가님’과 다른 ‘작가님’?


그럼 나도 결국 작가 호칭과 북토크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환호, 뭐 그런 걸 원했던 건 아닌지. 속물적인 욕심이 나를 굴러가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지. 욕심을 그냥 얻겠다는 게 아니잖아. 내가 쓰는 건 계산서지. 내가 쉽게 망하는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만큼만 읽는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하는 거지. 여러 사람을 가르치거나 이끌거나. 한물간 선생질에 빠진 인간들처럼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가 뭘 해도 바뀌지 않고, 글로 바뀔 수 있는 사람이면 무엇으로도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다 자기 자신만을 가르치는 거 아닐까. 그저 자기 자신을 가르치고 깨울 만한 재료를 찾을 뿐인 거 아닐까. 누군가는 그 재료가 된다. 나도 그 재료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서로에게 가르침의 재료가 될 수 있다면. 내가 사랑하고 존경해 온 작가들과, 때로는 그들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걸 알려주었다. 지우다 만 문장을 내버려 두고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지나가는 풍경처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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