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네.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만 서점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우아한’ 관찰주의자라든가 ‘다정한’ 무관심 같은 책 제목들을 보며 니글거리는 느낌까지 든다. 책 내용이 별로인 것도 아닌데 왜 제목을 그렇게 붙였을까. 무관심은 그냥 무관심일 수는 없는 건가. 무관심은 말 그대로 관심이 없다는 뜻이지 부정적인 분위기로 고착된 단어가 아닌데, 수식어로 사족을 붙이는 게 억지로 만든 해피엔딩 같다.
느끼할 정도로 감상적인 말들은 알다시피 책 제목에만 있지 않다. 요새 유통되는 글들의 태반은 사탕발림 같다. 차별과 폭력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도 결국에는 ‘사랑이 이길 것’이라느니, ‘위로를 보낸다’느니 변죽이나 울려댄다. 글쎄, ‘우리’의 ‘사랑’이 어디 대단한 적 있었나?
사실 내가 청소년기였던 십오 년 전만 하더라도, 감상성을 배제하다 못해 세상이나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오글거린다’고 비웃던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의 감상주의는 그 분위기에 반대하며 등장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거나 무언가를 놓고 감탄하는 것을 오글거린다고 말하는 멍청이들을 더는 견디기 힘들어서, 사람들은 다시 ‘다정함’이니 ‘우아함’이니 ‘위로’와 같은 말을 늘어놓게 되었다.
문제는, 쿨한 척하던 멍청이들과 다르게 굴려다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행복은 조금 보이게 되었을지 몰라도 부당한 상황에서 보여야 하는 저항과 비판은 잃어버리게 되었다. 심지어 폭력적이며 불의한 현실을 은폐하는 것에 동참하기까지 한다. 꽃과 너와 별을 쳐다보면서, 이 나라가 소외된 사람들이 차별받고 조롱당하기도 하는 곳이 아니라 아름다운 곳이기만 하다고 떠들라는 소리다. 아니면 울어도 ‘듣기 좋게’ 울던가. ‘말을 예쁘게’ , 타인이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정함과 위로도 좋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패륜적인 언어로 모욕하는 개자식들을 위해서까지 말을 예쁘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 얼간이들의 마음은 연약해서 사실상 어떤 얘기를 해도 상처를 받는다. 성경이 말한 대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라고 해도 상처를 받을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그들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집에서 노느라 압사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장관, 그 장관을 죽어도 못 자르겠다는 대통령에게도 ‘다정하게’ 항의해야 하는가? 폭력적인 진압으로 숨진 시위자를 애도하고 그를 위해 분노할 때보다, 그에게 폭력을 가한 경찰이 보복을 당할까봐 ‘비폭력’을 더 크게 더 많이 외친다면 그딴 비폭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걸로 그 개자식들의 성품이 달라지기라도 했는가?
대체 왜 누군가가 개소리를 할 때 그걸 지적하고 찌를 언어가 없어야 하는가?
돌아가는 판이 거대한 기만처럼 느껴진다. 나든, 다른 사람이든 누가 잘못하고 있을 때 그걸 신랄하게 지적하는 것과 약자에 가해지는 모욕의 언어는 전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전자를 폭력이라고 말하는 건 엄연한 피해망상이다. 압사 사고 못 막은 걸로는 장관을 해임시킬 이유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쓰레기’ 같지 않으면 대체 뭐가 쓰레기 같은가. 일부의 사람들은 이 정도 지적에 존재를 모독당한 듯이 길길이 날뛰는데, 여기서 그들의 낮은 자존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꽤 여러 번 쓰레기 같은 짓들을 하고, 그걸 반성하고 시정하며 산다는 걸 모른다. 한 번의 잘못, 한 번의 비판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바닥에 추락이라도 할 것처럼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 아마 다른 사안으로 옮겨가면 이와 비슷하게 굴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상담을 받든가 하지. ‘Love myself’니 ‘자존감 수업’이니 지겨울 정도로 언급될 때부터 알아봐야 했지만. 세상은 비윤리적인 행위와 말을 해놓고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히 감당하지 않고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그래 놓고 비판받기는 싫은 자기 확신 없는 바보들을 용인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크고 작은 힘으로 약한 이들을 억누를 때 맞대응하는 것조차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주제에 예쁜 척 지껄이는 꼴 하고는. 절대로 그 장단에 맞춰서 춤추지 않을 것이다. 우아하게 있지 않고, 다정하게 있지 않고, 내가 그냥 있다고, 예쁜 말 따위 걷어낸 건조한 문장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