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생활 - 쓰고 고치는 일

쓰는 힘을 만드는 것들

by 김남희

책에서 보는 ‘작가의 말’에서나 주변에서 같이 글을 쓰는 친구들에게서나 듣는 말이 있다. 맨 처음 문장이나 맨 마지막 문장, 떠오르는 한 장면 같은 것들이 글 한 편을, 책 한 권을 쓰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나도 쓰면서 실감한다. 한 문장, 한 장면과 같은 단서들이 글을 쓰는 힘을 제공한다는 걸. 어떤 사안에 대한 나의 견해를 체계화하고, 글로 형상화하기 위해 구성을 하고, 단어를 고르며 한 줄 한 줄 문장을 이어 나가고, 그러면서 생각 안 나는 걸 쥐어 짜내고. 단서를 떠올리면서, 그 모든 고생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단서들이 항상 도움만 주는 건 아니다. 단초를 유지하려다 오히려 글이 경직되거나 억지스러운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하나의 글을 쓰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반대로 ‘초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특정한 동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동기를 만들었던 내 가치관이 달라진다. 소설의 경우 인간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면, 캐릭터를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진다. 사람이 어떤 이유로든 죽는 건 운명이라고 보았던 스무 살의 나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힘들고 부담스러운 지금의 나는 당연히 등장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과거에는 등장인물이 사고를 당하거나 자살하는 식의 결말을 주저 없이 썼다면, 지금은 소설에 나오는 어떤 인물도 피를 보지 않도록 유의한다. (물론 스무 살 때도 자연사가 아닌 죽음을 맞은 사람을 함부로 품평하려 하진 않았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나라는 사람은 달라졌기에, 어떤 글은 필연적으로 원래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쓰는 사람은 쓰는 힘을 만드는 요소들 중에서 어떤 것이 자신에게 가장 본질적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내가 떠올리며 공감한 문장인가? 장면인가? 아니면 지속되는 분노나 기쁨인가? 대개 요소들은 복수다. 무엇은 버리고 무엇은 취해야 한다. 아니면 아예 다 버리고 새로운 요소와 동기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글을 고쳐야 한다. 장황하게 늘어진 문장은 줄이고, 지나치게 짧아진 문장은 의미를 분명히 할 정도로 늘인다. 글의 전반적인 논리 전개를 살피면서 얄팍한 문장은 삭제하고, 대신 내 견해와 관점을 드러낼 만한 함축적인 문장을 포함시킨다. 나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지나치게 어려운 단어는 다른 단어로 대체한다. 문장의 호응을 맞춘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점검한다. 성에 찰 때까지, 고치는 걸 반복한다. 글쓰기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면서, ‘퇴고’를 테마로 한 책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어디서나 한결같이 글은 끝도 없이 고치는 게 좋다고들 한다. “초고는 쓰레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 꽤나 공감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책의 저자들이 사람들은 글을 끝도 없이 쓰고 고치는 것에는 공감하면서, 자기 삶에는 어떤 것조차 고치려 들지 않는다는 걸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합법인지 불법인지가 인간 도덕성의 유일한 기준이 되었을뿐더러, 심지어 자신이 위법을 행했는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 시절 아닌가. 무단횡단이나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영상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윤리적으로도 문제시되는 불법 포르노를 보거나 하는 일은 죄도 아니라서 남들이 잘못했을 때 돌을 던질만한 자격이라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글쓰기 책 저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사람이 글쓰기로 인해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고 볼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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